회사에서 사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고성이 오가거나 호통을 치지 않았을 뿐, 내용으로 보아서는 꽤나 묵직한 꾸지람이었다.
이 나이에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은 민망하기보다는 미안한 일이다. 회사에 누를 끼치는 직원이 되기에는 연차가 좀 오래 되었고, 성과가 더디게 나오기에는 경력이 좀 오래 되었다. 눈치가 없기에는 나이도 좀 많아졌다. 이래저래 변명할 구석도 면피할 핑계도 없다. 정면으로 깨지고 전면으로 개선할 수밖에.
부서 이동을 한 지 한 달 남짓이 되었다. 같은 회사 안에서 부서를 옮겼을 뿐인데 근무 환경도, 업무 성격도, 부서의 인력 구성도 판이하게 달랐다. 숫제 이직을 했다 해도 이처럼 생경하지는 않으리라.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기분이지만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10년 가까이 몸에 익은 성향과 습성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일을 해야 하는데 윗분의 눈에 비친 나는 한 달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었나 보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무엇보다 가슴에 박혔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밥값은 해야 하는데, 월급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신입사원 시절, 유난히 날카롭고 일을 똑부러지게 하던 사수는 야단치는 것도 매서웠다. 자그마하지만 꽉 찬 사수언니 앞에 키만 컸지 텅 빈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일을 어찌나 야무지게 하는지 그 작은 사수 언니가 내게는 무척이나 크게 보였다. 어느 날 동기를 만났을 때 시무룩하게 말했다.
- 나 엄청 오래 살 것 같아. 욕을 하도 먹어서.
- 야, 그 정도로 오래 살면 난 안 죽어.
지금도 그런 기분이다. 불멸의 이순신도 아니고,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맥아더 장군도 아닌데, 이렇게 혼이 나다가 불사불멸이 되면 어쩌나.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남의 얘기를 하듯 무심히 말했다.
- 너 이제 혼날 때 됐지.
어릴 때부터 늘 늦자라는 아이였다. 키는 큰데 마음은 콩알만해 소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겁은 많고 적응력은 부족했다. 환경이 바뀌거나 하면 영락없이 앓아 누웠다. 유치원에서 캠프를 가면 2박 3일 내내 울다 오곤 했다. 엄마는 굴하지 않고 캠프를 보냈고 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멋진 성장 스토리는 나오지 않았고 늘 좌충우돌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엄마는 선수를 치는 데 도사였다. 선생님들을 만나면 신신당부를 했다.
-얘가 좀 느린데, 알아서 하게 놔두세요. 챙겨 주실 필요 없어요.
-얘가 행동도 느리고 꾀도 많아요. 잘 못하면 야단쳐 주세요.
선생님들은 엄마의 냉정한 평가에 당황하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딸은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엄마 말이 틀리지 않아서 반박도 못했다. 여간해서는 편들어주지 않고, 잘못을 지목할 때는 칼날같은 엄마 덕분에 보기와는 달리 쓴소리와 꾸지람에 끄덕없는 면역이 생겼다.
싹싹하지는 못해도 씩씩하게는 만들어 준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 좀처럼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 누구보다 매섭게 비판하고, 누구보다 엄정하게 꾸중하고, 누구보다 단호하게 판단하고, 누구보다 직설적으로 적시하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다. 비난에 발끈하거나 지적에 주눅들지 않는 강한 맷집이 생긴 것은 엄마 덕분이다. 아, 그래도 귀여운 여동생 같을 줄 알았는데 군대 후임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엄마 덕이라 해야 할 지 엄마 탓이라 해야 할 지. 여기까지만 하면 그럭저럭 훈훈할텐데 엄마는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 넌 가끔씩 야단을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