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니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자연 현상만큼이나 당연하게, 딸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팔할이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한참 동안 남의 말을 들어주고 또 기도하는 동안, 딸은 엄마를 뺏긴 기분이었다. 엄마는 나와 놀아 주어야지, 어째서 생판 얼굴도 본 적 없고 관심도 없는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지, 저렇게 한참 기도하고 있는지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남들이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듣고 앉아있는 엄마도 한심해 보였고, 가만히 앉아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하는 근심 어린 표정도 딱해 보였다.
엄마는 '기도의 빚을 지면 안된다'고 하시곤 했는데, 타인들이 기도를 부탁하거나 기도해 준다고 약속해 놓고는 기도를 해 주지 않으면 고스란히 빚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엄마의 등에 얹힌 영혼들은 하나 둘 늘어갔고, 엄마의 기도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딸의 심통도 늘어갔다. 내 기도를 하는 것 만해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남의 기도를 저렇게 오래 해야 한담? 남들은 다 기도해준다고 해놓고 남의 일은 잊고 살거나 잘 안되기를 바라고 살던데, 저렇게 미련스레 살아서 뭐가 남으려나 싶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딱하고 안쓰러워 보이는 일은 있게 마련이다.
엄마는 으레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던 어느 날이었다. 한 차례 크게 앓은 이후로 한동안 산보를 다녔다. 동네 야산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오른 것이다. 야트막한 산길을 가다보면 이정표 격이 되는 제법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누가 어떤 이유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돌탑이 있었다. 나름 산길의 서낭당인 셈이었다. 산길을 가는 사람들은 오르내리며 그 탑에 돌멩이를 하나씩 올려놓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서낭당이 유동인구만큼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만 보니 서낭당이 높아지려면 꼭대기에 돌을 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닥에 너르게 많은 돌이 깔려야 했다. 그래야 그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더 많은 돌을 쌓아 높은 탑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바닥에 돌을 쌓으려 하지 않고 악착같이 꼭대기에 돌을 올려놓으려고 했다. 큰 돌이 굴러 내릴 것 같으면 조약돌이라도 올려놓고 가곤 했다. 그 모습이 의아했지만 어쨌거나 그로 인해 그 자그마한 서낭당은 늘 같은 높이를 유지할 수 있기도 했다.
어느 날 같은 길을 가는데 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서낭당의 제일 밑바닥에 돌을 놓아두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능한 위쪽에 자신의 돌을 놓으려 안간힘을 쓰기 마련인데 쭈그려 앉아 바닥에 돌을 놓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신기했다. 호기심이 일어 나무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척 하며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서낭당 제일 밑바닥을 한 바퀴 빙 돌 듯한 모양새로 큰 돌들을 둘러 쌓아놓고는 합장인지 기도인지 모를 모습으로 손을 가만 모으고 있다가 자리를 떴다.
돌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딸이 내가 그토록 원망했던 엄마의 기도는 서낭당의 아래층에 깔린 돌이었다. “착한 끝은 있다” 거나, “내가 ‘남 좋은 일’ 하면 결국 너희에게 간다” 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도 결국 서낭당의 밑바닥을 다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굴러 떨어질 좁은 공간에서는 까치발을 들고 도움닫기를 해도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엄마도, 그 아주머니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매일 기도의 돌탑을 쌓아 가고 있었다. 기도가 길어지고, 어머니에게 기대는 영혼이 많아질수록 탑은 높아져 가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묵묵히 쌓아 올리는 탑의 가장 위에 딸이 있었고, 아들이 있었고, 남편이 있었다. 기도를 부실하게 하거나 대충 하면 그 맨 꼭대기 돌이 무너질까봐, 엄마의 기도는 그렇게 정성을 다 해야 했다. 우리 가족을 더 높은 곳에 올리기 위해 엄마는 끊임없이 낮은 곳에서 돌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나이를 먹도록 살아오며 거쳐 온 무수한 위기 속에서 용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엄마의 기도 덕분이리라. 엄마라는 존재는 왜 이렇게 딸의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가.
옛날 사람들이 서낭당에 돌탑을 쌓으며 기도하던 그 마음과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그가 믿는 신이나 기도의 형태는 다를지언정 진심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마음에 돌탑 하나씩을 쌓으며 살아간다. 그 탑을 올리며 인내와 희생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의 우둔함 탓이 아니다. 그 탑의 맨 꼭대기에 있는,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안위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크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겁 많고 소심한 필부들의 작은 소망이 우리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지탱하고 있는 힘일 것이다.
엄마에게 핀잔을 주던 딸은 언제부터인가 엄마를 닮아 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남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 몸을 수그리는 것이 익숙해진다. 물론 내 기도의 기저에는 어쩔 수 없는 기복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타인을 위한 기도와 축복이 내 가족에게 돌아오기를, 나의 진심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롯이 되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딸도 엄마도, 가장 낮은 곳부터 조용히 돌탑을 쌓아 간다. 우리만의 서낭당을 쌓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