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by 데이지

회사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연말에 하는 타운홀 회의는 연중 가장 큰 행사로,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하기에 몇 달 전부터 부담이 컸다. 행사를 앞두고는 계속 황당한 꿈으로 잠을 설쳤다. 전쟁의 발발과 대피로의 확보와 같이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이 배경이었으나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회사의 타운홀 뿐이었으며, 타운홀 개최 여부가 어떻게 될 것인지 발을 동동대다가 잠에서 깼다. 같은 날 회의를 하다가 부장님께서 지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제가 어제 악몽을 꿨어요." 순간 나와 사수님은 동시에 외쳤다. "어, 저도요!" 이럴 지경이니 이 대형 회의가 무사히 끝난 것에 우리는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딸은 엄마에게 보고를 해 주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엄마 잘 끝났어. 이제 밥 먹고 들어가는 길이야."

"그래, 감사하다."
엄마의 첫마디는 감사하다, 였다. 다행이다, 잘됐다, 잘했다... 이런 많은 말이 아닌,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많은 표현을 '감사하다'는 말로 묶어 버리곤 했다. 취업을 했을 때나 졸업을 할 때와 같은 좋은 일 앞에서 기쁨의 표현은 늘 감사로 시작되어 감사로 끝났다. 특정 대상에게 감사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면 모두에게 감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의 감사함은 집안 대대로 물려오는 유전이나 유물같은 것이다. 엄마는 아마도 외할아버지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늘 나와 오빠를 보며 감사하다, 감사하다 말씀하시곤 했으므로.

외할아버지께서 쓰러지신 것은 중학교 무렵의 일이었다. 칠순이 넘어서도 매일 역기를 들 정도로 정정하시던 외할아버지였으나 삐끗하여 몸져 누우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10여 년을 병석에 계셨다. 말년의 외할아버지는 말씀하시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외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갈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간신히 내밀며 반가워하셨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손을 잡아드리며 인사드리는 것 뿐이었다.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손녀를 볼 때면, 제대로 가누어지지도 않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셨다. 검버섯이 피고 해쓱한 얼굴에는 봄꽃같은 웃음이 만개하였다.


외할아버지는 매사 근엄하고 꼿꼿하셨다. 자태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몸가짐이나 생활 태도에 대해서도 종종 지적을 하셨다. 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 안 된다, 치마 위에 뭐 좀 덮도록 해라, 요즘 읽은 책은 무엇이냐 등등. 외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면 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머리띠를 했다. 정정하실 때는 멀게 느껴졌던 외할아버지인데, 병석에 누우신 외할아버지는 입을 벙긋대며 아이같이 웃으셨다. 사회적 지위라던가 체면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막혀 있던 감정의 여과장치가 사라진 것 같았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기도가 막혀 목을 두어 번 그르렁거리신 뒤 늘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무엇이 그렇게 감사한 걸까. 그 때까지 내가 아는 '감사하다' 는 인사란 주로 나이 어린 사람이 웃어른에게 하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손녀딸인 나에게 감사해 하시는 것은 영 어색했다. 감사하다, 고 말하며 외할아버지는 자글자글 웃고 계셨다. 얼굴을 덮은 주름 사이로 말못할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웃고 계신데 이상하게 눈물을 글썽이는 것 같기도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흐른 뒤에야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으리라. "얘야,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내 딸의 딸로 태어나 주어서, 이렇게 잘 장성해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도 네가 늘 빛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헤쳐 나가기를 내가 늘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 너는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란다. ......"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모든 좋은 말을 다 주고 싶었던, 그러나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의 애틋하고 절실한 마음이 그 한 단어에 응축되어 있었다. 엄마 없는 딸로 자란 당신의 딸에 대한 애잔함과 안쓰러움, 당신의 딸과 그 딸에 대한 대견함과 흐뭇함까지도.

'감사하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를 깨달았을 때 외할아버지가 문득 사무치게 그리웠다. 저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애교있는 손녀가 못 되었던 탓에 아양스러운 말 한 마디를 해 드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생전에 말씀드릴 수 있었어야 했다. 외할아버지는 값나가는 유품이나 거액의 유산을 상속해 주지는 못하셨다. 다만 당신의 딸과 손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이게 만드는 습관을 남기셨다. 말끝마다, 전화 끝마다 감사합니다, 하는 통에 뭘 그리 감사하냐며 상대방이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허나 마음에 담아둔 고마움과 소중함을 생의 유효기간 동안 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에.


행사가 끝난 후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칭찬과 격려를 많이 받은 덕분에 하마터면 으쓱해질 뻔했다. 알고 있다. 나의 잘 된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임을, 나의 잘못된 것은 다른 사람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불찰로 인한 것임을.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순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모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모든 좋은 말은 그저 감사함 안에 녹여내야 함을. 일 년치의 감사를 하루동안 다 한 것 같은 날이 저물고, 조촐한 부서 회식을 하며 내년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딸은 무거운 감사를 다시 새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은 날이다.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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