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실로 오랜만에 피아노를 친 것이 발단이었다. 얼떨결의 일이었다. 회사 행사를 하는 장소에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시간이 남아 건반을 눌러 보다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버린 것이다. 피아노를 제대로 연습한 것은 20년이 넘었기에 손이 굳지는 않았을까 염려가 앞섰다. 한창 피아노를 칠 때처럼 자유자재로 손이 움직여지지는 않았으나 손은 얼마간의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음을 머릿속에 계산해도 실수가 잦았다. 그래도 피아노를 치는 것은 무척 즐거웠다.
잘 치는 솜씨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피아노 소리가 듣기 나쁘지 않았나 보다.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업무를 제대로 하기에도 바쁜 열혈 사원은 덜컥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좀 더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에는 제대로 쳐 봐야지, 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피아노를 치니 재미있구나. 이 재미있는 걸 이토록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니. 피아노 학원은 강습보다는 연습실 대여 위주였다. 큰 상관은 없었다. 잘 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피아노가 치고 싶었을 뿐이므로. 어릴 때처럼 밤늦게 피아노를 치면 안 된다는 염려나 이웃집에서 전화가 올까 조바심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있는 것으로 되었다. 그저 치고 싶은 곡의 음을 간신히 흉내 내는 수준이지만, 더듬거리느라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곡도 허다했지만, 줄곧 키보드 위만 움직이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들으며 즐겁고 평온했다.
문득 엄마가 몹시 고마웠다. 처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손에 쥔 최초의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다. 당시에도 엄마를 졸라 바이올린을 배웠다. 유치원 때였다.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초등학교 지하의 비좁고 어두운 연습실에서 턱이 아프게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어도 바이올린을 꽤 좋아했다. 그러다가 돌연 피아노로 마음을 바꾼 것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였다. 학년이 올라가면 선생님은 반에서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들을 골라 피아노 반주를 시켰다. 피아노 반주자가 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으로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피아노로 선회했다. 아파트 단지에 피아노를 전공하신 분이 있어 그 집에 가서 피아노를 배웠다. 이전 레슨이 늦게 끝나면 그 집 오빠와 놀곤 했다.
원하는 것들을 모두 배울 정도로 여유가 넘쳤던 적은 없지만, 엄마는 이모가 입던 옷을 받아 입으면서도 딸의 학원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딸의 고질병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딸은 뭐든 시켜달라 졸랐고 엄마는 여러 차례 다짐을 하게 한 후에야 학원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딸은 뭐든 금방 싫증을 냈고 엄마는 다짐을 지키게 했다. 체르니 50번을 간신히 뗀 것도, 수영을 접영까지 간신히 배운 것도, 바둑과 서예를 제법 오랫동안 배운 것도 모두 엄마의 힘이었다. 윤선생 영어와 눈높이 수학이 재미있어 보였던 시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래도 어쨌든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계속 했으니 5년은 했을 게다. 선택에 책임지는 자세와 매일 조금씩 노력을 적립하는 것의 가치를 알게 해 준 것도 엄마였다.
피아노를 배울 때 엄마는 피아노 연습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종종 이렇게 말했다. 하루 연습 안하면 너 혼자 알지만, 이틀 안하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 안하면 모두가 알아. 이 말이 엄마가 만든 말인 줄 아는데 아니었다. 피아노의 '신' 으로 일컬어지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의 말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저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 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 것도. “청중이 있는 한, 그리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연주를 계속하겠다” 는 그의 말은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올 수 없다'는 말 또한 상기시킨다. 끊임없는 연습, 자신의 일을 즐기는 자세, 겸손함과 꾸준함. 어느 세계에서나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숫자의 세계를 사는 사람도 음표의 세계를 사는 사람도 지녀야 할 덕목은 일맥상통하기에 어린 날의 교훈은 아직도 팝업창처럼 떠오른다.
피아노 앞에 앉았던 시절이 주로 아이 때였던 탓일까. 피아노 연주 대회에 나간다는 설렘으로 몇 번씩 대회에 입고 나갈 원피스를 입어보던 아이로 돌아갔다. 피아노 소리에 시간이 교차했다. 희고 검은 정갈한 건반들이 내는 화음이 문득 생경하고 신비했다. 아직도 피아노를 칠 수 있다니. 아직도 손이 건반을 기억하고 있다니. 물론 오랜만에 보는 악보는 어려웠고 음은 줄곧 의도와 다른 불협화음을 냈다. 그래도 즐겁다. 잘 치지 못해도 부끄럽지 않다. 아직 피아노 치는 법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하루 연습을 거르면 내가 알고 이틀을 거르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을 거르면 모두가 알아. 네가 배우고 싶대서 시켜주는 거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지. 어릴 때 매일같이 듣던 엄마의 목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 같았다.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고단하지만 20년 만에 피아노도 칠 수 있는데 지난 10여 년을 매일같이 해 온 회사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생각한다. 서른 중반에 다시 피아노 연습을 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엄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