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어머니의 탓이 아니다

by 데이지

2750년 세계 최초 인구 소멸국으로 우리나라가 지목되었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주위에는 많은 DINK 족들이 있다.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은 자발적인 이유와 비자발적 이유가 혼재한다. 남성에 기인할 수도 있고 여성에 기인할 수도 있으며 그 둘의 합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중에 보건복지부나 정부에서 주목하는 것은 여성의 자발적 출산을 장려하는 것과, 양육비를 보조해 주는 것인 듯하다. 딸이었던 여성들에게 어머니가 되기를 권장하는 것. 출산의 칼자루를 쥔 것이 여성이자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머니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자격 요건이 필요하지 않지만, 어느 나이가 될 무렵부터 늘 '내가 어머니가 될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해 왔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차라리 자격증을 하나 따는 것이 쉽게 느껴질 만큼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 화수분같은 사랑과 끝없는 질문에도 답변하는 지혜와 자식의 부족함을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와... 어머니, 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눈물 글썽대기', '목이 메이며 한동안 말 잇지 못하기', '추억에 잠겨들기' 등의 기본 감정 옵션을 탑재한 것은 모성에 대한 우리의 정서가 유난한 탓이 아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이 감정의 본질은 비슷하다.


이 말은 대단해 보이는 이 사회와 이를 이룩한 위인들이 결국은 '어머니' 라는 존재의 희생과 사랑과 관심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출생아의 성비에서 여아가 남아를 추월하고, 대다수의 고등 교육기관과 교육과정과 전문직, 기술직의 비율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남성의 그것을 넘어서게 된 사회가 왔다. 과거 어머니의 전담과 아버지의 간헐적 참여로 이루어진 육아가 점점 불가능한 구조로 가고 있다.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희생을 감수하던 자가 손을 놓는 순간 종결된다.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했던 인구 구조는 결국 여성이 그 몫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붕괴된다. 육아는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의 먼 미래를 위한 공동의 희생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류는 다른 동물처럼 들판에서 방목되거나 우리에서 사육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고도로 집약적인 교육과 돌봄이 필요하다. 집단 지성과 집단 상호작용과 집단의 상호 이해가 필요한 십 수 년의 과정. 그것이 생명체의 역사에서 이토록 짧은 시간 내에 인류가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제 가족 제도나 사회 제도에서 한 역할에 그 몫을 전담시키기에는 우리가 각자 맡은 역할이 너무 많다.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자연히 품게 되는 흠숭과 공포의 양면적 감정은 단시간 내에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가 티핑포인트로 올라오기까지 누적된 수많은 크고작은 문제의 유기적 결과였던 것처럼, 출산율을 늘리기 위한 노력 역시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통계는 통계이고 수치는 수치지만 우리는 또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인을 냄비근성이라 자조하지만 사실 우리는 가마솥밥을 짓고 집집마다 장을 담가 먹을 정도로 뚝심과 인내심이 있는 민족이기도 하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 좋은 일 D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