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좋은 일은 남들만 좋은 거예요."
남 좋은 일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모님께 우리 남매가 종종 하던 이야기였다. 우스개소리 삼아 부모님이 여기저기 기부한 액수를 합치면 아파트 평수가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전래동화나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면 밭을 갈다가도 금은보화가 쏟아지곤 했다. 21세기에는 권선징악의 교훈이 통하지 않게 되었나 보다. 어쩌다 로또를 사도 용케 당첨번호를 비껴가는 신비만을 체험했다. 길을 가다 백원쯤 줍는 일은 없었고 지하철에서 도와달라며 쪽지를 돌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잦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만든 교훈은 빛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노숙인과 사회기초수급자를 위한 병원인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10년이 넘도록 장기 봉사활동을 하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탈이 나겠다며 만류해도 막무가내였다. 아버지가 고향 근처로 가서 일을 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20년은 너끈히 채우고 계실 터였다. 선행을 해도 모두가 선의의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저 나이에 굳이 나와야 하나, 자기 일이 잘 안 되니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타인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하거나 각색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봉사를 해도 하지 않아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삶을 살아야 덜 억울하다 않겠냐며 항의하는 딸자식에게 부모님은 사람이 덜 되었다며 나무랐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 다 덕을 쌓는 일이다.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남들에게 베푼 것이 당신 자식들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따라서 그것은 기쁜 희생이었다.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기부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나누는 것이 좋다는 주의였다. 우리가 뭐 그리 큰 부자도 아닌데, 기부에 인색한 진짜 부자들도 많은데, 속이 탈 때도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도 실력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제 곳간을 늘리려는 사람들이 우글대는데 부모님처럼 살아서는 자식들 고생이나 시킬 뿐이었다. 잘난척하며 부모님께 반발의 뜻을 표하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오빠는 동조해 주지 않았다. 남 좋은 일 메들리에 간혹 혀를 차기는 했으나 별 말은 없었다. 도리어 은근히 부모님 뜻을 따랐다. 봉사활동을 하고 남의 일을 도맡아 하고 기부를 하곤 했다. 포기했거나 세뇌당한 것이 분명했다. 답답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맏이는 고분고분해도 말 안 듣는 모난 자식 하나쯤 있어야 인간지사가 공평해진다. 모난 둘째가 여기 있었다. 신은 모든 곳에서 세상을 구원하지 않지만 돈은 모든 곳에서 세상을 구원한다고 항의했다. 글을 쓰는 것 또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생각에 반항하고 싶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돌연 금융회사에 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경제논문공모전에서 제법 큰 상을 탄 것이 계기였다.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것이라 모두가 그 언론사에 지원할 것으로 여겼다. 짐작과는 다른 일에 뛰어 들어보고 싶었다. 부모님이 믿는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금권을 믿고 물신주의의 숭배자가 될 것이다. 부모님이 그토록 의탁하는 신은 내 기도를 들어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무엇하러 믿어야 하나. 회사는 지원자의 검은 속내의 알 길이 없었는지, 적어도 중도포기는 하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맹랑한 지원자를 단박에 채용했다.
돌아온 탕아의 이야기가 의미있기 위해서는 먼저 철없는 탕자가 있어야 한다. 모서리에 정을 맞으려면 먼저 모난 돌이 되어야 한다. 모난 돌은 시간이 지나며 둥글려지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구세군 냄비에 지갑이 열리고 각종 후원회에 납부를 한다. 어렵고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회사에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걷으면 꼬박꼬박 낸다. 한 NGO 를 통해 해외 아동과 1:1 결연을 맺어 후원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직장인의 고질병인 '때려치워 병'이 도지지 않기 때문이지 선행이 목적은 아니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지 남 좋으라고 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어쨌거나 남 좋은 일은 하지 않기로 했는데,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야지. 나 하나쯤 덜 착하면 어때? 계속 착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바득바득 우겨야겠다. 그런데 피는 물보다 진해서, 자꾸 '남 좋은 일 DNA' 가 발현되는 것만 같다.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