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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Dec 20. 2018

SKY 캐슬, 엄마 고마워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SKY 캐슬>에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 전문직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이야기가 나온다. 공부만 잘 하면 도둑질을 하든 친구를 괴롭히든 어른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든 용서받는다.  도벽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일환으로,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은 당연한 능력의 표출로, 예의범절의 상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으로 포장된다.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도입되었다. 인성교육의 실상은 이러했다. 특별활동 시간에 감동적인 영화를 몇 편 보고, 연간 봉사활동 의무 시간이 신설되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단순 사무보조를 하거나, 병원에 가서 바닥 청소를 하거나, 공립도서관에서 서고 정리를 하는 것으로 봉사활동으로 인정받았다. 해당 기관에서는 필요 없는 잡무를 억지로 만들어 미심쩍은 아이들의 손에 맡겨 놓으면 나중에 다시 확인해야 하니 시간이 이중으로 걸린다는 볼멘소리가 줄을 이었다. 아이들의 인성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다양하고 의미있는 봉사활동이 많이 생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학생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지만 20년 전쯤 인성교육이 걸음마를 뗄 당시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인성교육이나 특별활동은 다 함께 허우적대는 수준이었기에 누구도 특별대우를 받지 못했다. 수시모집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의 특별활동은 글쓰기 대회나 공모전에서 수상한 실적이 주였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통일과 관련된 글쓰기 대회에서 제법 큰 상을 받아 금강산에 가는 현대 금강호에 승선한 것, 그래서 얼떨결에 학교 대표로 <도전골든벨>에 나간 것 정도가 전부였다.


부모의 능력으로 특별활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현실이라면 내 아이는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민을 가야 하나, 친구에게 물어 보았더니 미국에도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한국 스타일의 교육 열풍이 성행한다고 했다. 한술 더 떠서 중국인들은 더하다고. 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는 질문에 친구는 답했다. "자기 팔자대로 사는 거지. 나처럼 무심한 부모를 만난 것도 얘 팔자야."


아, 다행이다. 엄마 아빠가 저렇게 코디나 설계를 하려 했다면 학창시절은 매우 불행했을 것이다. 학원 수업을 몰래 빠지고 동네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거나 문제집을 사겠다며 새 책 비용을 받아서는 헌 책을 사거나 하는 정도의 일탈은 매우 정상적이었던 것일까. 결국 들킬 때마다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공부는 중요하지 않으니 사람이 먼저 돼라. 사람 안 된 채로 공부만 잘하면 사회악이 되는 법이야."


사회에 크나큰 기여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해악을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사회지도층은 아니지만 억압과 수탈을 당한다는 억하심정이나 피해의식을 가져본 적 또한 없다. 결과는 노력한 만큼이고 꼼수는 발각되기 마련이며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산다. 생계를 걱정할 만큼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도, 공부보다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꾸지람을 매일같이 들었던 것도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부모님은 아마 이러시겠지.

"캐슬에 살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아. 행복하지 않은 채로 캐슬에 살면 병이 나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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