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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Feb 12. 2019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I had a dream...?

심한 감기몸살로 며칠을 앓았다. 특히 코가 하도 막혀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부비동염이라고 했다. 부비동염도 급성과 만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급성인 줄 알았는데 코가 막힌 지 한 달 반이 넘어간다고 했더니 이러다가는 만성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축농증, 비염, 부비동염은 다 비슷한 증상인데 결국 기관지가 좋지 않고 코가 막히면 이런 병증인 것이다. 원래도 기관지가 좋지 않은데다가 미세먼지로 인해 대기의 질도 계속 악화되고 추위까지 겹쳐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낌새가 이상했다. 감기기운이 있고 몸이 으슬으슬할 때 누구나 자기만의 처방이 있을 것이다. 약을 먹거나 몸을 감싸고 땀을 빼거나 장시간 휴식을 취하거나 하는 등. 평소와는 달리 감기약을 먹고 뜨거운 차를 마시고 갈비탕 한 그릇을 비우고 두꺼운 잠옷과 수면양말을 신고 잠을 푹 자도 좀처럼 예후가 좋아지지 않을 때 마음이 덜컥했다. 이쯤 되면 나을 때가 됐는데. 평소보다 2배 이상의 기간 동안 증상이 지속되는 것은 뭔가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이다.


몇 해 전에 비슷한 질환으로 몹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강도가 더 심하고 더 오래 가서, 나중에는 바이러스가 눈까지 번져 눈병이 심하게 났었다. 눈병이 얼마나 심했냐 하면, (말하기도 소름끼치지만) 흰자위가 부풀어 튀어나오고 눈에서 진물이 계속 났다. 각막이 상해서 나중에는 각막보호렌즈까지 껴야 했다. 병이 길어지니 설명하기도 지쳐서, 병증을 기록하기 위해 셀프 차트를 만들었다. 엑셀로 달력을 만들어 매일의 증상과 복용, 혹은 투약했던 약을 정리해서 기록한 것이다. 병원에 가지고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는 몹시 칭찬하셨지만 병이 빨리 낫는 것은 아니었다.


한 달 내내 이어진 눈병은 동네 안과를 다 돌고 대학병원까지 가서야 나았다. 3월이었는데 병원을 다니고 앓아눕느라 이미 일 년의 휴가를 3월에 다 써버려서 그 해에는 여름휴가조차 갈 수 없었다. 그후유증 때문인지 가끔 눈에서 부유물이 떠 다니는 느낌이 날 때가 있다. 당시에는 독립하기 전이었는데, 나중에는 엄마까지 눈병이 옮아 온가족이 몇 달간 고생을 했다. 이럴 지경이니 이 부비동염의 끈질긴 병마에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패션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이어트도 미용도 건강해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하고 공기 좋은 곳에 가면 분명 나을 것 같다. 그리하여 인생에서 꼭 하나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누가 묻는다면,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I have a dream" 을 외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꿈은, 노년에 하와이에 가서 사는 것이다. 연중 따뜻하고, 습하지도 않고, 비도 많이 내리지 않는 천혜의 기후. 그런데 하와이에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밝히는 순간 지인들은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너 하와이 집값이 얼만 줄은 알아?"

"하와이에서 노후를 보내는 건 미국인들에게도 꿈이야. 거기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하와이 가서 뭐 해먹고 살지는 생각해 봤어?"

"..."

숫자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탓에 너무나도 현실적이 되어버린 우리는 그렇게 하와이 부동산 가격을 검색하고 필요자금을 계산해 보았다.

부비동염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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