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김남주 역(열린책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입장과 상황에 맞게
상대를, 그 분위기를 판단하고, 정의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결론을 기정사실화 시킨다.
그 과정에서 고정관념이 생기고,
상대에 대한 불변의 이미지가 각인된다.
그렇게 '나'의 유연적 모습과 '너'의 고정적 관념 사이에 오해가 시작된다.
가끔,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나역시 "그 사람은 이런 성격이잖아" 하며
캐릭터를 고정시킨 적이 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적 트러블이
사실 가장 힘들다.
에밀은 그의 불편한 이웃인 베르나르댕을
과연 온전히 이해했을까?
내가 생각하는 너의 모습이 과연 진짜 너의 모습일까?
너는 정말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일까?
나도 나를 모르겠는걸.....
어쩌면 죽을 때 까지 모를지도......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p.9-
"우리에겐 예의를 지킬 의무가 있을까?"
"예의를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문제는 말야, 쥘리에트, 꼭 그래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해낼 수 있는가 하는 거야."
-p.42-
공허의 힘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공허는 냉혹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예를 들어 공허는 선(善)을 거부한다. 공허는 집요하게 선의 길을 가로막지만, 반대로 악(惡)의 침투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처럼, 공통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물(水)도 기억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공허가 기억력을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선에 대해서는 외국인 혐오증적인 반응을 보이고 (<난 네가 누군지 몰라. 그래서 네가 싫어.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어>), 악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이보게, 친구. 내 집에는 자네가 머문 흔적들이 숱하게 남아 있다네. 이곳이 자네 집처럼 편안하잖은가!>)
-p.101-
선은 순금처럼 자연 상태에서 순수한 형태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선이 눈에 띄어도 별다른 감명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선은 유감스럽게도 행동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선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악은 가스와도 같다.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냄새로 식별할 수 있다. 악은 걸핏하면 정체되어 숨막히는 층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악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다가 악이 해놓은 일을 발견한다. 악이 차지한 지위와 이룩한 과업을 보고서야 자신이 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가스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스는 팽창, 탄력, 압축, 억압의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악의 특성이 아닌가.
-p.101~102-
등꽃을 바라보며 나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은 끔찍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쥘리에트에게 나를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p.17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