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스콧 피츠제럴드
사람이 무엇인가에(혹은 누군가에게) 집착을 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내가 집착하는 대상을 통해 끊임없이 나의 존재 이유를 찾고,
나의 비뚤어진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좀먹고, 무너져 내리는 삶에 순수함으로 가장한 울타리를 쳐
울타리 밖 타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1920년대,
경제는 연일 호황을 누리고,
돌고 도는 돈을 주체할 길 없어
이곳 저곳 흥청거리는 파티가 성황이던 그 때.
겉으로만 고고한 속물들과
무료한 일상에 마음마저 식어버린 사람들이 판치는 그 당시 미국.
그 곳에서 적어도 뜨거운 가슴만은 간직하고 있었던 개츠비.....
그의 사랑은 그를 개츠비로 다시 태어나게 했고,
개츠비 답게 성장시켰으며,
개츠비로 죽게했다.
그에게 조금 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지나간 옛사랑에 대한 미련을 발목에 묶은 채
개츠비라는 이름 뒤에 자신을 속이며 살진 않았을텐데......
앞에선 미국의 허황된 아메리칸드림을 비웃고,
뒤에선 무모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미국정신에 박수를 보내는
그야말로 미국스러운 이 책이
왜 그토록 많은 작가들에게 최고의 책으로 추앙받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사랑’ 이리라.
(나는 번역본을 읽을 때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함께 비교하며 병행해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개츠비의 경우, 굉장히 많은 번역본이 있었는데, 마음 같아선 모든 번역본을 다 비교하며 읽고 싶었지만 대출권수에 제한도 있었고, 시간도 많지 않았기에 일단 6권의 책만 빌려 병행독서를 했다. 주된 책으로는 민음사의 책을, 주 비교책으로는 인디북의 책을, 그리고 서브책으로 을유문화사, 열림원, 문학동네, 피카소, 킨들 어플을 통한 영문판 책들을 함께 읽었다. 주 책과 주 비교책은 완독을, 나머지 책들은 감명 깊은 구절이나 난해한 부분을 비교하여 읽었다. 개인적으로 민음사의 책은 원본과 가장 가깝게 번역되었다고는 하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래도 문학작품이다보니 읽는 즐거움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그에 비해 인디북은 좀 더 매끄럽게 읽히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몇몇 번역에서 조금 가벼움이 느껴졌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번역해 화제가 된 문학동네 책은 기대보다 많이 아쉬웠다. 소설가가 다른 이의 소설을 번역하는 것은 자칫 자신의 문체로 원본을 덧씌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기 번역가로 원작자보다 더 크게 띠지로 이름을 내걸고 홍보했던 김석희씨 번역의 열림원 책.... 가독성면에서는 좋았지만 번역가를 내세운 마케팅에 너무 기대감을 키운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태우씨 번역의 을유문화사.... 어떤 면에선 이 책이 내가 읽기에는 가장 무난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내 취향엔, 민음사의 책을 주 책으로 하고 을유문화사나 인디북 등 다른 출판사의 책을 서브로 하여 함께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문체에도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놓고 같은 부분을 읽어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딸이라니 잘 됐지 뭐, 그 애가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군. 이 세상에서는 예쁘고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것이 여자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이니까.’
-p.32 <을유문화사>-
그렇다면 그 6월의 밤에 그가 그토록 애타게 바라보던 것은 밤하늘의 별만이 아니었다. 개츠비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호화로움의 자궁에서 갑자기 분만하여 생생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p.116 <민음사>-
‘세상에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분주한 자와 지친 자가 있을 뿐이다.’
-p.156 <인디북>-
데이지가 갑자기 개츠비와 팔짱을 끼었지만, 개츠비는 방금 자기가 한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그 불빛이 지니고 있는 크나큰 의미가 지금 영원히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엄청난 거리에 비하면, 그 불빛은 그녀와 거의 닿을 만큼 가까워서, 마치 달에 바싹 붙어 있는 별처럼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 불빛은 선착장의 초록색 불빛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를 마법사처럼 사로잡았던 것이 하나 줄어든 것이다.
-p.146 <열림원>-
5년에 가까운 세월!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한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데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환상 때문이었다. 그의 환상은 그녀를 넘어섰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을 가지고 그 환상에 자신을 내던졌고, 그 환상을 끊임없이 키웠고, 자기 앞에 떠도는 화려한 깃털을 모두 모아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정열이나 신선함이 아무리 많아도, 한 인간이 그 유령같은 마음속에 비축할 수 있는 것을 당해낼 수는 없다.
-p.150~151 <열림원>-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p.159 <민음사>-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p.172 <민음사>-
석 달 전 처음으로 그의 고풍스런 저택을 찾았던 날 밤이 생각났다. 잔디밭과 집 안 도로는 그가 부패한 인간일 거라 추측해 대던 사람들의 얼굴로 붐비고 있었다. 그는 부패할 수 없는 자신의 꿈을 감춘 채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p.203 <을유문화사>-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p.254 <민음사>-
소설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소재를 다루느냐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p.258 <민음사> 작품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