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사노요코/이지수 역(마음산책)

by 소연





이토록 시크하고, 이토록 뻔뻔한 암환자가
또 있을까?
^^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나는
그녀의 팬이었다.
이미 그녀의 그림과 글은
나의 취향 저격을 넘어서
문장부호, 띄어 쓴 여백 까지도
백발백중 내 취향이다.

그녀의 글이 좋다.
그녀의 생각이 좋다.
그녀의 트집이 좋고,
그녀의 곤조가 좋다.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역시, 그녀는
내 마음을 흔들 줄 안다.

한번도 본 적 없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이 꼰대같은 일본 할머니가
참 그립고 그립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닌 듯해서 나는 요리에서 손을 뗐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p.45-
가장 비참한 것 속에 익살이 숨어 있다.
-p.51-
일을 의뢰받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 전에는 아무리 한가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 듯 배배 꼬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십 년을 매일같이, 공휴일 명절 할 것 없이 뒤틀리는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일이 좋다는 사람이 있다면 얼굴 한번 보고 싶다. "넌 일단 시작하면 빠르잖아. 빨리빨리 해치우면 편할 텐데." 상식적인 친구들이 충고를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싫어, 그렇게 일하면 부자가 되는걸." "부자 되기 싫어?" "응, 싫어. 근근이 먹고사는 게 적성에 맞아. 부자들 보면 얼굴이 비쩍 말랐잖아. 돈이 많으면 걱정이 늘어서 안절부절 못하는 거라고."

-p.65-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p.66-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다니. 한달 전쯤 노노코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너희 남편도 할아버지니까 슬슬 신경 써야지. 어디 아프면 곤란하잖아." "정말 그래. 근데 우리 남편도 음흉하다니깐." "왜?" "피곤하다는 소릴 절대 안해. 음흉하지 않니?" 나는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아. 페페오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따라 죽을 거니까." 나는 그 때도 노노코의 얼굴을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76-
성격은 병이다. 사사코 씨의 꼼꼼함도 병이다. 겉모습만 화려하지 내실이 없는 미미코 씨도 병이다.
-p.88-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아흔 해 살면서 지쳤지? 천국에 가고 싶어. 같이 갈까? 어디 있는 걸까, 천국은."
"어머,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던데."
-p.109-
젊은 시절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피로가 풀렸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자 무리하면 근육이 다음 날부터 저려왔다. 좀 더 나이 들고 보니 이틀이 지나서야 근육이 욱신거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 친구는 술을 마신 이틀 후에 숙취가 생긴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노인이 아닌가. 늙으면 다들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노인이 굼뜬 건 늙어서 그렇겠거니 싶었는데 속사정이 이랬다니.
-p.110-
좋아하는데 이유 따위 없다. 그저 좋은 것이다.
-p.126-
대도시는 지구에 흩뿌려진 암이다. 나 또한 지구를 망치는 암세포의 일종이다. 암세포 중에서도 나는 암환자며, 이윽고 몸 어딘가에서 암이 재발해 죽게 될 운명이다.
제아무리 인간이 "모두 함께 살아요"라고 똑똑한 척해봤자, 지구가 맹렬하게 증식하는 암과 영원히 공존할 수 있을까.
중국, 인도, 아프리카처럼 거대한 나라들도 온 힘을 다해 새로운 암을 증식시키고 있다. 인류는 그런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 된 생물인 건가.
-p.150-
청춘이란 자신의 젊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너도 머지않아 나처럼 되겠지, 아, 고소하다.
-p.151-
아, 싫다. 이제 도시 따위에 우르르 몰려가지 않을 테다. 이 세상이 못마땅하다.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점점 못마땅하게 변하고 있다. 조그만 반딧불이 무수히 모여든 것 같은 불빛을 매달고 여기저기 서 있는 거대한 빌딩 속에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그것으로 나는 살아간다. 살아가긴 하지만 곤란하다.
-p.151-
어째서인지 우리는 동정과 보호를 받는 신체 장애인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차별이 아닌가. 이런 사고방식은 신체 장애인에게 부담을 준다. 나쁜 짓이야말로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행동 아닌가. 그러나 정신에 장애가 있으면 오로지 멸시받을 뿐이다. 사람들은 결코 그런 이들에게 다가서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무시무시한 흉악 범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노망은 인격이 파괴되어서 치매라고 인정되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인격이라고 부르는 걸까. 치매 환자를 두고 예전의 훌륭한 그가 아니다, 인격이 바뀌었다,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변했다고들 하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린 주름투성이의 갓난아기 같은 엄마를 외계인이라고 여길 수 없다. 갓난아기로 태어나 어른이 되었고, 아기를 낳아 기르고, 화내고 울고 고함치고 웃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며느리와 서로 으르렁거렸던 엄마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엄마는 역시 같은 사람이다. 기저귀를 갈 때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뭇거뭇한 주름투성이의 이상한 형태를 보면 '이 엉덩이로 아기를 일곱이나 낳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의 엉덩이가 아니다.
엄마의 뇌도 엉덩이처럼 이상하게 생겼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 뇌와 몸으로 사랑을 했고, 이 뇌로 하찮거나 심각한 거짓말도 했고, 노래도 불렀다. 외계인의 뇌가 아닌 인간의 뇌다.
-p.176~177-
"있잖아, 인생이란 이렇게 하찮은 일이 쌓여가는 것일까?" 너무도 우스꽝스러운 나머지 바닥을 구르며 웃었지만,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지 않았다.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