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시지에/이원희 역(현대문학)
무지함을 이용하는 권력과
권력으로부터의 유린을 당연시 여기는 무지함 중
어느 것이 더 참담한 것 일까?
중국 역사상 가장 끔찍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10년 간의 문화대혁명 시기.....
당과 사상이라는 철저한 통제와 폭력 아래서도
욕망은 싹을 틔우고, 청춘은 피어난다.
청춘은 알고 있다.
금기를 깼을 때의 쾌감이 얼마나 큰지를.....
규율을 한 번 깰 때마다
객기인지 용기인지 모를 그 마음도
점점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을......
전쟁은 참혹하고,
독재는 잔인하며,
이념을 가장한 탄압은 처참하고,
자유를 배제한 통치는 암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靑春)은,
깜깜하고 깊은 욕망의 밑바닥에서
지(知)적, 내(內)적, 성(性)적 욕구를 퍼올려
말라 죽은 줄 알았던 자아(自我)에
앎의 쾌락이란 푸른 새싹을 돋게 하는
인생의 '봄'임에 틀림없다.
재교육을 받기 위해 두메 산골로 보내진
뤄와 나......
그들은 금지된 책을 읽는 것으로
인민의 의식적 성장을 두려워 한 마오쩌뚱에
소심한 반기를 들었다.
산골 바느질 소녀는 인민이다.
그녀가 글을 읽고, 문학을 접하고,
세련과 교양을 입는 순간
인민을 넘어 선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뤄를 떠났다.
뤄는 깨달았을 것이다.
왜 마오쩌뚱이
그토록 문학과 예술을 금지시켰는지를...
예술이 무지를 뒤엎는 힘을......
"내가 발자크의 원문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고 나자 그애는 네 점퍼를 잡아채어 다시 한 번 읽었지.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급류 소리가 멀리서 들려올 뿐 조용했어.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은 흡사 천국처럼 푸르렀지. 그애는 그 글을 모두 읽고 나더니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서 마치 성스러운 물건을 든 신자들처럼 네 점퍼를 떠받치고 있었어."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발자크는 그애의 머리에 보이지 않는 손을 올려 놓은 진짜 마법사야. 그애는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몽상에 잠긴 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지. 그러고는 네 점퍼를 자기가 입었어. 꽤 어울리더군. 그애는 자신의 살갗에 닿는 발자크의 말들이 행복과 지성을 갖다줄 거라고 말했어."
-p.86~87-
우리는 가방 쪽으로 다가갔다. 가방은 굵은 새끼줄을 십자 모양으로 둘러 단단히 묶인 상태였다. 우리는 새끼줄을 풀고 조심스레 가방을 열어보았다.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가방 안에 가득한 책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이 두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맨 위에는 우리의 오랜 친구 발자크의 소설 대여섯 권이 놓여 있고, 다음으로 빅토르 위고, 스탕달, 뒤마, 플로베르, 보들레르, 로맹 롤랑, 루소, 톨스토이,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 그런가 하면 디킨스, 키플링 , 에밀리 브론테 같은 영국 작가들의 책도 있었다.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나는 환희의 안개 속에서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방에서 소설책을 한 권 한 권 꺼내서 들쳐보고, 작가들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뤄에게 책을 넘겨주었다. 창백해진 내 손끝은 흡사 살아 있는 인간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 은행 강도들이
지폐가 가득 든 가방을 열었을 때가 생각나......"
뤄가 말했다.
"기쁨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 않아?"
"아니, 난 증오심만 나는걸."
"나도 그래. 이런 책들을 읽지 못하게 금지한 자들이 모두 가증스러워."
-p. 138~139-
나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장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비속함도 없이 철저한 개인주의를 그린 『장크리스토프』는 내게 새롭고 유익한 사실들을 듬뿍 가르쳐주었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개인주의라는 것이 그토록 탁월하고 폭넓은 것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둑질을 해서 『장크리스토프』와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재교육까지 받은 나의 빈약한 머리로는 한 개인이 전세계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장난 삼아 시작한 연애가 위대한 사랑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사용한 과장된 허풍조차 작품의 아름다움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수백 페이지의 거친 강물이 나를 집어삼켰다. 내게 있어서 그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책이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침범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삶도, 세상도 더 이상 이전의 것과 같지 않았다.
-p. 153-
"넌 좀전에 거짓말을 했어. 그러니 발자크 책이 있다는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양가죽 점퍼를 벗어 뒤집은 다음, 털이 없는 부분에 내가 옮겨 적은 문장들을 보여주었다. 잉크로 쓴 글자들은 전보다는 좀 흐려졌지만 아직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의사는 글을 읽으면서, 아니 그보다는 감정을 하듯 들여다보면서 담배를 꺼내 내게도 한 개비를 주었다. 그러곤 담배를 피우며 거기에 적힌 글을 모두 읽었다.
"푸 레이 번역이군. 그분의 문체를 잘 알지. 그 역시 네 부친처럼 인민의 적이 됐지만."
그가 중얼거렸다.
의사의 말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물을 억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 눈물은 바느질 처녀 때문도, 내 임무가 완성된 것이 기뻐서 나온 눈물도 아니었다. 그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발자크 번역가를 향한 눈물이었다. 어쩌면 그 눈물은 한 지식인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경의, 가장 큰 감사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 p. 23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