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헤세/이노은 역(민음사)
세상 어디 하나 천한 곳이 없고,
세상 어느 하나 하찮은 일이 없고,
세상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누구보다 영리하고 재능 많던 크눌프.....
그는 세상을 대표하는 '안정적인 것'과 담을 쌓은 채
떠돌이 삶을 살아간다.
그는 자유로움을 즐겼고, 사랑했으나
죽음을 앞두고는 한탄했다.
안주하지 못한 삶을,
어그러진 사랑을,
방랑자로서 받은 조롱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허망함을.....
하지만, 신은 말한다.
네가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필요했노라고....
네가 곧 나였다고.....
나는 항상 너와 함께였다고......
삶의 반환점에 와 있는 나는
가끔 내 삶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서럽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채 끝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소위 잘나고, 잘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하찮고, 찌질하게 살아가는 듯 하여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멋있게 살고 싶은데......
멋있게 마치고 싶은데.......
신을 대신해 크눌프가 말한다.
"잘 살고 있어, 소연아.....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
네가 행하는 모든 일들,
네가 울고, 웃고, 화내고, 부끄러워 하는 모든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너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중요하고 소중한 조각조각임을 기억해.
자신을 부끄러워 말렴.
사고를 성숙히 하렴.
때로는 밝게 빛나고, 때로는 깊은 어둠이 드리운
네 삶의 모든 순간의 조각들을 소중히 여기렴.
밝고 어둔 조각들이 모두 모여
네 삶의 마지막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되리니....
잊지 말렴.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너를......."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걸 배우게 되지."
- p.30-
"작별의 표시로 키스를 하고 싶군요, 당신이 나를 완전히 잊지 않도록 말입니다."
-p.58-
"적절한 순간에 바라보면 거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p.68-
"어떤 아름다운 것이 그 모습대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럴 경우 난 그것을 좀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걸. 이것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꼭 오늘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야. 반대로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난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그러면서 난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동정심도 함께 느낀다네."
-p.68-
"난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제일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의 조명탄들이 어둠 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느끼게 돼. 이 두 감정은 서로에게 연결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
-p.69-
"계획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야. 사람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거든. 실제로는 바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매순간 아주 무분별하게 행동한다구. 친구가 된다거나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아마도 내가 말한 경우에 해당되겠지.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철저히 혼자서 지고 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는 없는 거야."
-p.71-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p.79-
삶은 얼마나 단순하고 명확했던가!
-p.122-
"이제 그만 만족하거라."
하느님께서 경고하듯 말씀하셨다.
-p.133-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