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문학동네)

by 소연





망각은 신의 선물인가, 저주인가?!!


죄책감을 모르는 연쇄살인범에게 치매는,
불안하고 억울한 현재의 반복인 동시에
수치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의미없는 죗값이다.

기억이 사라진다.
사라지는 기억과 남아있는 기억을 연결시킬 방법은
끊임없는 메모와 녹음 뿐이다.

메모한다.
녹음한다.
또 메모한다.
또또 녹음한다.
.
.
.

당신은 당신의 기록을 믿는가?

당신의 기록은 팩트인가?


보통의 사람들이 경험할 망각의 병이 저주라면,
병수와 같은 살인마에게 내려진 치매는
오히려 선물같단 생각에
책을 덮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하고 손끝으로 힘이 빠져 나간다.

섬광 속에 이야기 하나가 지나간 듯 빠르게 읽히지만
마지막 마침표를 확인하는 순간
은근한 공포에 몸이 무거워짐을 느끼게 되는 소설.

김영하의 단편이 매우 땡기는
뒷끝까지 야무진 소설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p.14 몽테뉴<수상록>-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p.93-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p.98-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p.105-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p.117-
그는 현재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어떤 곳, '적절치 못한 곳'에서 헤맨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가 점증해가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p.126-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