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사카이준코/조찬희 역(바다출판사)

by 소연



한번도 나의 중년을 그려본 적이 없다.
오히려 노년은 상상해 보았던 듯 한데.....

아, 그러고보니
한창 무대에 서던 시절,
나의 30대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다.
20대인 지금 보다 더 안정적이고,
내 일에 인정받으며 나만의 영역을 구축해 놓았으리라...
20대엔 갖지 못할 중후하고 우아한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30대의 모습이리라.....
그리 생각하고 상상했었다.

하지만, 나의 30대는 출산과 육아로 증발해버렸다.
'나'가 아닌 '엄마', '아내'로의 시간.....
우아하고 중후할 거란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화장은 잊었고, 치장은 올드해졌다.
그렇게 나는 10년의 망각 후에 40대를 맞이했다.
전철에서, 버스에서, 길에서, 시장에서, 여행지에서
수없이 만나 온 중년의 아줌마들......
그녀들을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나이먹지 말아야지... 했지만,
결국은 나도 그녀들과 다를 것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

중년은 그런 건가보다.

인생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
하나, 둘 나이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장착하다가
<중년>이라는 문을 지나치는 순간,
마치 메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복제되어 나오듯
꼭 닮은 아줌마, 아저씨로 변해 나온다.
물론, 100% 모든 사람이 이같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 대부분
역시나, 결국엔
이같다는 사실......

인생 중반기라 하여 중년(中年).....

아직 남은 육아와
이제 시작 된 봉양.
현재를 즐기면서도
노후까지 챙겨야하고,
불어나는 몸처럼
따지고, 계산해야 할 생각들도 많아지는
참으로 막중하고도 책임감 무거운 나이,
중년(重年).....

이 막중한 시기에
조금 주책맞으면 어떻고,
조금 별스러우면 어떠랴.
온전히 아줌마스럽게 중년을 받아들이고,
노년을 향해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그럼~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중년만이 누릴 수 있는 중년스러움을
맘껏 누리며 사는 것,
그것이 나의 중년에 대한 예의인 것을....





중년에게는 종종 중년의 위기가 들이닥친다. 느닷없이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지기도 하고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데, 이러한 위기의식이 드는 것도 중년이란 나이가 어'중간'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젊었을 때로 돌아갈 수 없지만 노년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지금 이 상태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몸도 얼굴도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마음 속에서 이런 불안들이 소용돌이친다.
-p.5~6-
'중간'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까지 늘 따라다닌다. 젊은 세대는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의지하면서 '저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며 노인 취급을 한다. 노인 세대 또한 경제적으로 의지함과 동시에 간병 같은 노동력까지 기대하면서 우리를 압박한다. 회사의 중간 관리자처럼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도 치이는, 그야말로 수고가 많은 세대가 바로 중년이다.
-p.6-
"자꾸만 중년 여성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결국은 아줌마 아닌가요? 아줌마와 중년 여성, 뭐가 다른 거죠?"
중년 여성 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테니 한마디로 설명하겠다. 요즘 중년 여성 대부분이 '나는 중년이기는 해도 아줌마는 아니다' 생각 할 것이다.
"나? 그냥 아줌마지 뭐."
말은 이렇게 하겠지만 이 발언은 '이렇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상식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하는 의도를 바탕으로 한 겉치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중년이지만 아줌마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중년은 나이를 나타내는 말이고, 아줌마란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여긴다.
-p.9-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이 가장 빛났던 시절을 '본래의 자신'으로 받아들인다. 초기 설정이 너무 높았던 까닭에 나중에 변화가 찾아오면 찾아오는 족족 당황하고 허둥거린다.
-p.28-
마음 편히 늙을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정말 행복한 사람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다. 순조롭게 나잇살이 찌고 뺨에는 섬처럼 선명한 기미가 있다. 그래도 남편에게 사랑받고 아이들은 꾸밈없이 자란다. 게다가 본인 또한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싶어진다. 그녀는 굳이 젊어보이는 옷을 입지도 유행을 좇지도 않는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녀에게 산처럼 든든한 안정감을 준다.
-p.30~31-
소녀성과 중년 여성과의 궁합은 최악이지만 더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소녀적 분위기와 잘 어울리게 된다. 백발의 할머니가 똑딱 머리핀으로 머리를 고정시킨다거나 클래식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보면 '어머 너무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p.98-
자기 안의 소녀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우리가 노인이 된다면, 그때는 이 세상이 귀여운 할머니로 넘쳐 날 것이다. 과거의 '귀여운 할머니'라는 개념을 뒤집어엎을 만 한 '너무나 귀여운 할머니'가 대거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를 본다면 긴 세월 동안 답답하고 울적했던 욕구가 폭발했구나 생각해 따뜻하게 지켜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다시 소녀성을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스누피 티셔츠를 버리지 말자.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 오래 살자.
-p.100-
주름이나 흰머리 같은 사소한 노화에 일일이 반응하고 대처하려는 사람은 손에 넣어야 할 게 아직도 많다면서 아등바등하는 느낌을 주는 한편, 그것을 그대로 둘 수 있는 사람에게서는 풍부한 충적감이 흘러넘친다.
-p.140-
앞으로 40년 동안 친구나 가족에게 병에 대한 이야기를 질리지 않게 하려면 말재주도 필요할 것이다. 그 말재주를 키우기 위해 알아둬야 할 것은 '자랑하지 않을 것' '불쌍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p.173-
오래 전 늦가을에 교토를 찾았다가 단풍 명소에 가 보았다. 발끝에 빨갛고 노란 잎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불면 잎이 떨어졌는데, 그 광경이 마치 가을빛으로 물든 극락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을 거닐던 아줌마들은 말 그대로 천진한 소녀처럼 웃었고,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쫓아다녔다. 그 모습은 마치 극락에 올라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였다. 그녀들은 아마도 평범한 주부였을 것이다. 그렇게 자주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고, 분명 몇 개월 전부터 친구들과의 교토 여행을 매우 기대했을 것이다. 여행 오기 전 가족들의 식사까지 완벽히 만들어 놓은 다음 겨우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들이 여행지에서 이리도 아름다운 광경과 마주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디 마음껏 기분 전환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p.184~185-
화를 잘 내든 감정 기복이 심하든 혹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중년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포용력이 부족한 내가 앞으로 더 나이 들면서 어떻게 변해 갈지 궁금하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보다 더 뻔뻔해지는 데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뭐 어때?' 하는 자세로 받아넘길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거야말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리라. 모든 감정을 마모시켜 반질반질한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둥글둥글해졌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p.217-
오지랖을 넓힐 지 말지 고민된다면 하고 보는 것이 중년의 의무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 알아듣게 말해 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까지 들이지는 말자고!
-p.227-
젊었을 때 중년 여성을 보면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나고 떠받들어 주는 사람도 더는 없고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즐거워 보일까?"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중년이라는 것을 직시했고 인정했기 때문에 즐거웠던 것이다. 중년이라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거나 숨지 않았기에 당당해 보였던 것이다.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