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박영근 역(민음사)

by 소연




고전은 참 신기하다.

100년, 혹은 200년 전의
지금과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도, 풍습도, 의식도, 생활상도 다른
먼 나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 시대, 내 나라 내 주변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이
오롯이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앞 부분의 긴 서사를 잘만 넘기면
얽히고 설킨 인물들간의
갈등과 사랑과 분노와 화해를
폭풍처럼 경험할 수 있다.
왠만한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내민다.
욕하면서 책 읽는 재미야 말해 뭣하랴~!
^^




1800년대의 프랑스,
그곳에 고리오 영감이 있다.
모성애와 부성애를 욕할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고리오 영감의 딸들을 향한 지나친 부성애는
감동스럽기 보다는 답답스럽다.

내가 1800년대의 프랑스를 모르기에,
지참금이며, 남편의 정부(情婦)와 부인의 총각 애인,
체면치레를 위한 사치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이상하고 용납이 안되기도 하지만,
그걸 배제하고 생각해 보아도
고리오 영감의 두 딸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아버지의 마지막 연금까지 쪽쪽 빨아 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아버지 마음에 상처만을 남긴 두 딸년들...
부디 아직 양심이 남아있는 으젠이
그 양심이 사라지기 전 두 딸들에게 복수 해 주기를...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 부모님께 나는
고리오의 딸 같은 자식은 아닌지......
나는 내 아이에게
고리오같은 부모는 아닌지......





이 하숙인들을 보면 마치 다 끝나버렸거나 지금 상연하려는 연극이 연상됐다. 염색된 무대 막 사이에서 난간의 조명 아래 상연되는 드라마가 아니라 침묵하지만 살아 있는 드라마, 마음을 뜨겁게 움직이는 얼어붙은 연극이자 계속되는 드라마였다.
-p.18~19-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그것 때문일까? 이 문제는 사회적 불공정성과 많은 연관을 지닌다. 어쩌면 진정한 겸손이나 무기력 또는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계속 참으라고 하는 게 인간 본성일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가장 허약하고 어린 부랑아조차도 얼음이 얼 때는 모든 집의 초인종을 눌러보거나, 몸을 추켜올려서 새로운 기념비 위에 자기 이름을 쓰려고 한다.
-p.26~27-
진실한 감정에는 눈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믿어요. 이 구십삼년대의 불쌍한 사람은 가슴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어요. 딸들이 자기를 창피해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딸들이 남편을 사랑하고 있고, 자기는 사위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았어요. 그래서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어요. 자신을 희생했지요.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는 스스로 떠나버렸어요. 딸들이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서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범죄에 아버지와 자식들이 공모한 셈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요.
-p.107-
우리 마음은 보물 같아서 단번에 이 보물을 쏟아버리면 우리는 끝장나지요. 돈 한푼 없는 사람보다도 자기 감정을 전부 드러내보인 사람을 우리는 더 용납하지 않지요.
-p.107-
<행복은 몸을 가뿐하게 해주는 것인가봐.>
-p.130-
인간의 감정이란 가장 좁은 곳에서나 가장 넓은 곳에서나 똑같이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p.187-
너희들은 괴로울 때만 내 눈앞에 나타나는구먼. 너희들은 나에게 너희들의 눈물만을 보이는구나.
-p.324-
아버지는 나에게 심장을 주셨지만 당신은 내 심장을 뛰게 했지요.
-p.338-
그는 이 사회를 거창하게 나타내는 세 가지 표현을 보았다. <복종>과 <투쟁>과 <반항>, 즉 <가정>과 <세상>과 <보트랭>이다. 그런데 그는 결심할 수 없었다. <복종>은 귀찮고, <반항>은 불가능하며, <투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생각했다. 그는 안정된 생활에서 오는 순수한 감정을 기억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과 함께 보낸 옛날을 돌이켜보았다. 가정의 자연스런 규칙에 순응하여 이 사랑스런 사람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충만되고 지속적 행복을 그곳에서 발견하고 있었다.
-p.349-
명백한 죄는 가정 환경에서 비롯한 성격 차이와 다양한 이해관계 및 처지 때문에 모습을 수없이 바꾸면서 용서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형식상 요지부동한 사회 규범은 흔히 이런 경우에 유죄를 선언하는 법이다.
-p.350-



*보탬: 발자크는 <인간 희극> 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수많은 소설들을 창작해 내었다. 각 소설들엔 겹치는 인물들을 배치하여 마치 각각의 소설들을 조각퍼즐처럼 맞추면 거대한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 처럼 구성하였다 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란 말인가!!!
그 큰 그림이 궁금하여 또 다른 그의 소설을 찾게 하다니......

* 보탬2: 발자크를 알게 한, 발자크에 입문하게 한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중국 소녀> 에 감사를...... 책의 꼬리는 물기에 얼마나 달콤하고 유혹적인지.....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났을 때의 기쁨은 또 얼마나 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