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과 아들의 오늘이 마주하는 순간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오래된 필름영화를 보는 듯했다.

국민학교 5학년 즈음 , 오락실이라는 놀이공원만큼이나 짜릿한 공간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2살 어린 남동생은 형에게 들었다며 오락실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 당시 용돈은 1주일에 500원이었고, 오락을 하려면 100원을 오락기에 넣어야 했다. 용돈을 받는 월요일, 우리 남매는 오락실로 달려갔고, 용돈을 모두 탕진하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들곤 했다.


주로 테트리스, 고인돌, 스트리트 파이트 등 다양한 오락을 즐겼지만, 그중에 제일은 너구리 게임이었다. 곳곳에 놓인 압정과 뚫린 바닥을 피하고, 뛰어넘어 과일을 모두 먹어치우면 해당 판의 미션을 완성하는 단순한 게임이었고, 중독성이 어마어마했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까만색 바탕화면에 주황색 너구리가 점프하며 압정을 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당구나 골프처럼 무언가에 중독될 만큼 빠져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 그런 경험 말이다.

용돈은 바닥났지만, 오락이 너무 하고 싶은 우리 남매는 방바닥에 베개와 수건 등을 깔고, 인간 너구리가 되어 팔딱팔딱 뛰다가 미끄러지곤 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오직 게임을 하기 위해 숙제를 하고, 게임을 하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게임을 보상으로 걸면 그 어떤 협상도 타결된다. 가령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집돌이 아들에게 강원도 여행을 제안하며, 게임 30분을 보상으로 주면 언제든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요즘 아들이 즐겨하는 게임은 ‘무한의 계단’이다. 캐릭터가 무한히 생기는 계단을 최대한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고, 올라가야 높은 점수를 받는 게임이다. 역시 중독성이 강해 보인다.


산책광 남편은 퇴근시간의 늦고 빠름에 상관없이, 퇴근 후에는 늘 우리에게 산책을 가자고 한다. 늘 싫다고 하는 아들이지만, 오늘따라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번에는 집 근처 장승배기역 뒤쪽 맛집과 예쁜 카페가 있는 골목길로 산책을 떠났다.

남편과 나는 새로운 골목길 걷는 것을 즐겨한다. 색다른 인테리어로 있는 힘껏 멋지게 꾸민 가게를 보는 것도,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자기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가게를 보는 것도 좋다. 좁고, 꼬불꼬불해서 다음이 예상되지 않는 사잇길도 재미있다. 산책을 하며 무척 두리번거리는 우리 부부다. 그렇게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이며 걷고 있는데 아들이 평소보다 한 톤 높고, 한 레벨 큰 소리로 펄쩍 뛰며 말했다.

앗싸! 30점. 신. 난. 다!
:::어린이보호구역 속도제한표시:::

제법 큰 소리라 우리 부부는 아들 쪽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도로 바닥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바닥에는 단지 속도 제한표시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해를 못한 표정을 짓자, 아들은 우리를 위해 조금 전 상황을 재연했다.

아들은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높이 점프하여 속도제한표시의 빨강 동그라미를 살짝 밟은 후 다시 점프하여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너구리 게임 속 캐릭터가 점프하여 당근을 먹은 것처럼 말이다.

머릿속은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오래된 필름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상영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아들의 오늘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다음 여행은 누구랑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