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터릴리 Oct 27. 2023

가르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간

  이제는 곧 전학 가는 호영(가명)이. 그전에도 교우 관계에서 갈등(이라 쓰고 폭력이었던) 이 있었지만 요즘 좀 잠잠하다 했더니 잘 안 풀리는 수학 문제를 만나거나 잘못해서 고쳐야 하는 상황에서 화를 이기지 못하고 학습지를 찢고 씩씩거리는 행동이 반복되기를 몇 번째. 좋게도 이야기해보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려봤지만 집에서도 훈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고, 행동이 개선되는 게 보이지가 않았다. "호영이 너,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거 할 때는 성질부릴 거면 학교 오지 마!"라고 내뱉고는 또 아차 싶다. 이거 이거 정서적 아동학대 아닌가? 스스로를 검열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대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얼굴을 보고 이름을 부르기가 힘들었다. 꼭 이 일 때문은 아니겠지만, '내가 이 일을 그만둔다면?'이라는 상상을 요즘 꽤 자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을 대하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거다. 학교에서는 웃음이 잘 안 나고 시크한 선생님으로 지낸다. 그리고 학교 밖을 나오면 원래의 나로 돌아오듯 웃음 많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이런 모순이 꼭 내가 나이기를 부정하는 듯했다. 


  왜 이렇게 빨리 소진되는 느낌일까, 나는 겨우 10년 차인데? 


연차가 늘어난 거 제외하고 요즘 나의 생활에서 달라진 것을 돌아본다. 결혼, 대학원 생활 시작... 다 좋고 재밌는 일인데. 그때 내가 예전에 몸담고 있던 교사 모임 카톡이 울린다. 


'그 많은 말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기록을 남기려 애써주신 마음에 감사합니다.'


  대학원 수업과 겹친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고 눈팅만 하고 있는 선생님이 남긴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고 동시에 깨달았다. 요즘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 버리기 시간이었다. 어떤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교사로서 힘든 아이를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 아이를 매일 봐야 한다. 아이와 나 사이에 어떤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생겼다고 가정하자. 그다음 날, 그 다음다음 날에도 아이를 보고 교육적으로 대해야 한다. 안 좋은 감정을 '버리지' 않으면 나도 사람인지라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할 수도 있다. 이전에 2주에 한 번 교사 모임에서는 시작할 때 삶 나누기 시간을 꼭 거치는데, 이때 나의 개인적인 삶 혹은 학교에서의 생활에서 나누고 싶은 것을 이야기했다. 때로는 아이 때문에 힘든 일, 때로는 아이 때문에 기뻤던 일을 말하고 또 들으면서 서로 위로와 공감을 나눴다. 그것 자체가 힐링이자 정화였던 것을 돌아보니 느낀다. 


당장 사람들과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면? 


  글로 써 '버릴' 수도 있다. 이번에 내가 택한 방법이다. 아이 때문에 힘든 마음,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아침 일찍 교실에 와서 주절주절 썼다. 참 웃긴 게 나 혼자 보는 글인데도 '이건 교사로서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내가 교사 자격이 있나?'라고 계속 검열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대한 날 것의 내 감정과 생각을 끄집어 내려고 했다. 한 2~3일 그 행위를 지속했다. 그랬더니 힘들었던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이 스멀스멀 조금씩 편해짐을 느꼈다. 무엇보다 글로 써 '버리기'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힘들게 하는 아이를 보느라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따뜻하게 나를 바라봐주고 믿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이었다. 억지로 좋게 생각하려 노력해도 잘 안 되었는데 글로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써 '버리고' 나니까 비로소 있는 상황 그대로를 바라보고자 하는 내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권한다, 버리기를 


  어떤 사람을 대하기 힘들고 싶지만 일적으로 계속 대해야 한다면, 특히 아이들을 만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버리기 시간을 꼭 가져 보라고 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는 건 한계가 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왜냐하면 나 역시도 한 친구가 지속적으로 자기 힘든 일을 나에게 토로했을 때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고 결국 점점 그 친구와 멀어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면서 힘들었던 일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공감해 주기가 힘들다는 것도 잘 알기에. 가장 좋은 건 같은 업계,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고 상황상 여의치 않다면 종이에 써 버리를 추천한다. 시간은 길면 더 나의 마음 깊은 속까지 어루만질 수 있겠지만 5~10분, 짧아도 괜찮다. 다만 일정한 시간에 모임 참여나 글쓰기에 임하는 게 좋다. 그 루틴 자체가 내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평일 일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다. 버리기 시간을 저녁에 잠시 가져보는 게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에게 전했지만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