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서 한국어는...
태국인, 스리랑카인, 몰골인, 중국인, 베트남인, 라오스인, 카자흐스탄인, 프랑스인
28명 정원인 우리 반의 국적이다. 외국인노동자센터의 일요일 2시간, 무료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에 '가나다라'를 따라 하는 초급 1 수업은 3주째 여전히 한글 문자와 구조를 배우고 있다. ㄱ,ㄴ,ㄷ,ㄹ 자음에 ㅏ,ㅑ,ㅓ,ㅕ,ㅗ,ㅜ,ㅣ 모음을 붙여 다양한 조합을 만들고 따라 소리 낸다. '다/타/따'의 발음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입 앞에 손바닥을 대고 입김의 차이를 느끼도록 한다. 이제 시작이다.
10대에서 60대 초반까지 모여 있는 우리 반 학생들은 진도도, 따라오는 속도도 제각각이다.
어느 한쪽에 맞출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 다 이해할 때까지 무작정 반복도 할 수 없어 수업시간은 항상 바쁘다. 3주 내내 '오'와 '우' 발음은 헛갈리고 한글 쓰기 페이지에 나와 있는 조합도 쉽지 않아 글자는 그림이 된다. '궤'와 같은 조합은 종종 'ㄱㅞ'로 쓰여 있다.
외국인이라 얼마나 낯설고 답답할까 싶다가도 전혀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학생 옆에서 난 괜히 소리를 높인다. '아니.. 다시 읽어 보세요. 다음 이건? 이건요? ' 막상 수업을 마치고는 혹시라도 오해를 했거나 자존심 상하셨을까 후해도 되고 미안해진다. 휴일 오전을 바지런히 배움으로 체우는 그 2시간 만으로도 그들의 한국어가 쑥쑥 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앞서며 혼자 달려가다 막상 수업을 마치고는 반성하는... 나는 여전히 초보 한국어교사인 거다.
외국인 노동자 또는 국제결혼한 동남아 출신의 여성들이다 보니 일요일 수업에 참석하는 게 공부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주말 근무로 못 나오는 경우,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 결석이 늘어난다. 결석 사유 확인과 출석을 독려하는 전화를 돌리면서 그들의 미안함과 불편함이 묻어 나는, 몇 개의 단어로 서로의 의도를 주고받는 과정이 마쳐지면 괜스레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내가 외국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좌절과 어려움이 투영되면서 매번 같은 단계에 머물고 제자리걸음으로 배움 자체를 외면하게 되던 마음이, 그들도 똑같겠구나.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반대로 내가 외국어를 습득하고 배우는 태도나 방법이 더 좋아질 거라 막연히 기대했던 건 그저 바람이었다. 어쩔 수 없는 단계인 걸 알지만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없고, 스스로도 너무 우스꽝스러운 발음에 머릿속이 뿌옇게 변하면서 머리와 입이 따로 움직이는 상황... 그냥 그걸 피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 그래서 외국어 배우기는 어려운 거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난 다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자격증을 준비할 때와는 또 다른 절박함의 공부. 모국어라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있지만 문법적으로 어떤 특성이 있고, 왜 그렇게 되는지 아무 지식이 없었던 걸 이제야 알게 되고... '언어'로서 한국어는 동일한 단어가 다양한 문맥과 상황에서 다르게 쓰이고, 불규칙이나 예외적인 내용은 왜 그리 많은지. 게다가 관계 중심인 한국문화와 언어에서 쓰이는 다양한 층위의 높임체까지.
여전히 외국어 배우기가 어렵다고 투덜거리지만 그게 한국어가 아닌 게 다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