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 안의 세계여행 - 네덜란드

네덜란드 역사문화기행 수업을 듣고

by 유랑행성

물과 싸우며 땅을 만든 나라, 네덜란드

물과 싸우며 국토를 지켜낸 나라, 자유와 다양성을 삶의 방식으로 삼는 나라.
작지만 세계 무대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네덜란드(Nederland)'가 이번 강좌의 주제였다.

여행지로 크게 주목받는 편은 아니지만, 튤립·풍차·오렌지색, 합법적인 성매매와 대마초, 그리고 ‘히딩크’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나라.
두 시간이라는 짧은 수업이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가치관과 사람들의 세상을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신선하고 흥미롭다.


관용과 실리의 문화, "Gedogen"

네덜란드의 사회제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Gedogen(헤도헌)"이라고 한다.
‘눈감아 주다, 묵인하다, 용인하다’라는 의미로,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라도 현실적인 이유로 처벌하거나 단속하지 않고 허용하는 태도를 뜻한다. 영어로는 to tolerate 또는 to turn a blind eye to로 번역되며, 금지와 방임 사이의 회색지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다.

이 철학은 동성결혼, 안락사, 성매매, 대마초 사용 같은 논쟁적인 사안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금지보다 통제가 낫다"는 현실주의 속에서, 정치·종교·젠더·생명과 같이 민감한 주제에도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한다.


작지만 강한 혁신 국가

우리나라 국토의 약 40% 크기에 인구 1,800만 명 남짓이지만, 세계 시장에서의 키워드는 "혁신"이란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동인도회사, 1602년)와 증권거래소(1609년)를 탄생시켰고, 필립스(Philips)는 CD-ROM·Blu-ray·카세트테이프·속도 단속기 등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또한, ASM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EUV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농업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보인다. 농업 종사자는 전체의 4%에 불과하지만, 농·축산물 수출 세계 2위, 화훼 수출 세계 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1차 산업은 후진국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첨단 과학기술과 자동화로 친환경·고부가가치 산업을 만들어낸 사례가 아닐까. 사실 유럽 나라 중 친환경, 높은 생산성의 농축산 산업이 큰 규모를 담당하는 국가들이 꽤 많다. 식량 산업은 국가 전략의 중요 축이기도 하고, 기후 위기와 국제 분쟁이 잦아지는 시대에 단순한 산업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책임지는 근간이 되는 전략산업이니까. 네덜란드의 농업의 위상은 '강한'국가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항목일 것 같다.


박물관이 보여주는 가치관

네덜란드의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며 강사는 다양한 체험공간의 사진과 함께 설명을 했다.

네덜란드는 아니지만 나도 꾀나 충격과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북유럽 국가들의 박물관 방문경험을 떠올리면... 박물관이란,
연대기적 진열 대신 주제별로 재구성해 질문을 던지고, 오감을 자극하며 배움을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어느 관광지의 건축물이나 유적지 보다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선사했던 공간이었다.


이번 강좌에서 네덜란드의 특히 인상적인 점은, 식민지 시절 약탈한 4,000여 점의 유물을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 반환한 결정이었다. 진정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자체의 가치보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역사를 평가할 만큼 성숙된 사회에서만 내려질 수 있는 결정 아니었을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네덜란드의 사회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입헌군주국의 국경일인 "킹스데이(4월 27일)"부터 성소수자 축제 "프라이드 암스테르담(7월 말)"까지, 축제의 주제와 형식이 다양하다.
전체 인구 중 25%가 이민자 출신이며, 58%가 무교다.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미스 네덜란드로 선발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실제로 다양성이 존중되는,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의 모습인 것 같다.


자연환경이 만든 공동체 정신

네덜란드 국토의 25%는 해수면보다 낮고, 가장 높은 지점도 해발 321m에 불과하다.
터전을 지키기 위해 수 세기 동안 물과 싸워온 역사는, 공동체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역할과 연대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을 것 같다. 실리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쩜 이렇게 가혹한 자연환경과 조건이 만들어 낸 삶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환경은 암스테르담의 독특한 도시 경관에도 담겨 있다.
1000개의 다리, 90개의 섬, 운하 옆에 빼곡히 들어선 커널하우스—좁고 긴 집 구조와 꼭대기 도르래 창고는 공간 활용의 지혜와 그들의 성실한 삶이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오렌지색으로 기억될 나라

나에게 네덜란드는 그저 ‘유럽의 부유한 나라 중 하나’ 였지만 두 시간의 수업을 통해,

이 나라는 자유와 관용, 혁신과 공동체 정신이 어우러진 선명한 오렌지색으로 다가왔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가치관과 문화를 지닌 나라들이 있다.


여긴 언제 가볼까?

왠지 네덜란드는 관광이 아닌 한 동안 일상을 보내는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가 맞을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손 안의 세계여행 -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