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달콤한 신호, '행복의 기원'을 읽고서
행복이란 건 뭘까?
너무 흔히 얘기하는 '행복'은 사실 딱히 실체가 있지도,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무언가도 아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상황과 강도도 다 다를 테니, 이건 정말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인 거다.
그래도 우린 마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행복을 이야기한다.
막연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단어, 그래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제목은 꽤나 궁금증을 자아냈다.
내가 모르는 어떤 기원이 있는 걸까? 행복을 느끼기 위한 방법이나 조건을 알 수 있게 될까?
10년 전 출간된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근거하여 행복을 파악한다. 기본적으로 행복이 철학이나 심리학처럼 머릿속에서 구성된 고결한 ‘가치’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실 그 출발점부터가 꽤 반가웠다. 행복해지기 위해 생각을 고쳐먹고 감사해야 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나 심리 에세이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이 동물이라는 극히 단순한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했다면, 이 책은 다윈의 입장에서 행복은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현상은 인간이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필요로 했던 감각과 반응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나 이성과 데이트를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래야만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마치 개를 서핑하게 만들기 위해 주는 '간식'과 같다. 서핑(생존)을 하게 하려면 간식(행복)을 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간식이 금방 소화되어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배가 부르면 다시는 서핑을 하지 않을 테니까. 작가는 이를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같다’고 표현한다. 반드시 녹아 없어져야 다음 사냥을 나설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논리가 나온다.
뭔가 형이상학적인 형태가 아니라, 실제로는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선택한 과정의 결과로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설명이 나에겐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생존 도구를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리니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그냥 사는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행복도 그렇게 그냥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수 있겠다 싶다.
우리는 생명체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냥 살아간다.
거창한 의미 없이, 지구상의 숱한 생명체들처럼 그냥 살아가는 존재이다. 긴 생존의 여정 속에서 뇌가 보내주는 '행복'이라는 달콤한 신호를 이정표 삼아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행복의 가장 본질적인 장면은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거창한 철학적 수식어를 다 걷어내고 나면 남는 본질은 결국 이토록 단순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맛있는 것을 먹으며 느끼는 즐거움. 그것이 우리 유전자가 우리에게 바라는 최고의 생존 방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