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주름은 왜 얼굴보다 늦게 생기는 걸까
“나이 들수록 시간이 참 빠르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이 말은, 어느덧 내 입술 끝에도 익숙하게 매달려 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이미 너무 방대해져서, 고작 하루라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을 감각하던 예민한 촉수가 나이와 함께 무뎌져 버린 탓일까.
‘나이 듦’과 ‘삶의 속도’ 사이의 이 묘한 반비례 관계는, 신기하게도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공통의 서사가 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도대체 어떤 느낌인 걸까?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살아오다 보니 모든 풍경이 눈에 익고, 그 익숙함이 오히려 현실감을 흐릿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정신은 십 년 전의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는데, 거울 속의 나는 낯선 주름을 입고 서 있는 경험. 그 어색한 괴리감을 더 이상 부정하지 못하고 담담히 수긍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나이 듦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모여 앉아 옛 기억의 실타래를 풀다 보면, 엊그제 같은 일들이 너무도 가볍게 ‘10년 전’이라는 라벨을 달고 튀어나온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단절 앞에서 우리는 그저 허탈하게 웃고 만다. 시간의 속력을 잠시 체감했다가도, 이내 애써 외면한 채 다시 오늘을 산다. 다음 모임에서는 이 간극이 더 벌어져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서글픔을 예감하면서 말이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믿었던 시절엔, 삶에는 정해진 시작과 끝이 있고 그사이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정거장이 있다고 믿었다. 나이에 걸맞은 생각의 깊이와 마음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줄 알았다. 겉모습이 변하듯, 마음도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단련되고 무르익어 근사한 어른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이라는 무대를 잠시 스쳐 가는 방랑자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제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똑같은 정거장을 거치는 것도, 정해진 숙제를 끝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이토록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삶에 ‘발견’이 사라지고 ‘반복’만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딱히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무리 없이 흘러가는 일상은, 우리를 시간이라는 급류에 무방비로 내던진다.
가끔은 지나가는 시간의 자락을 붙잡고 애처롭게 매달리고 싶어진다.
“잠깐만,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난 아직 이 순간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단 말이야.”
삶에서 이렇다 할 변곡점을 만들지 못한 채, 반복의 익숙함과 지쳐버린 몸으로만 세월을 통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속도감에 휩쓸려 나 자신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간절함이 오늘 내 마음속에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그저 흘려보내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아깝고, 나는 아직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