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쿠키는 냄비에 담겨있었다.

TV장 아래 숨겨 둔 어린 시절의 보물상자

by 유랑행성

베이킹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그때, 엄마는 집에서 직접 쿠키를 구워 주셨다.


밀가루와 버터, 설탕을 아낌없이 넣은 반죽이 커다란 볼에 담기면 동생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앞에 쪼르르 자리를 잡았다.

연녹색 둥근 오븐이 예열되는 동안 부엌은 벌써 달콤한 공기로 채워졌다.

Gemini_Generated_Image_7a59ed7a59ed7a59.png


우리는 반죽을 동글동글 굴려 납작하게 누르기도 하고, 엄지와 검지로 꼭 집어 상투처럼 봉긋한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총이나 칼 같은 거창한 모양을 만들겠다고 욕심을 부리던 동생 옆에서,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쿠키를 완성하려 정성껏 반죽을 만지작거렸다.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면 우리는 유리창 너머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잠시 후 엄마가 오븐 뚜껑을 열면 뜨거운 김과 함께 진한 버터 향이 훅 끼쳐 왔다.
노릇하게 구워진 쿠키들이 수저 끝에 걸려 하나씩 나오는데, 동생이 야심 차게 만든 총 모양은 대개 형체를 알 수 없이 부풀어 오른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제 손으로 만든 것이 가장 특별하기라도 한 듯 식기도 전에 자기 것을 찾아 입에 넣기 바빴다.


구워진 쿠키들은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냄비 속에 차곡차곡 담겼다.
밀폐용기가 귀하던 때라 엄마는 냄비를 활용하셨는데,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모아 둔 그 냄비들은 TV장 아래 숨겨졌다.
모두가 아는 비밀 창고이자, 내게는 가장 완벽한 보물상자였다.


TV를 보다 광고가 나오면 나는 벌떡 일어나 여닫이문을 열고 냄비 뚜껑을 들췄다.

가둬 두었던 고소한 향이 올라오며 먹기 전부터 설레게 하던 순간.

모양은 삐뚤빼뚤하고 크기도 제각각이었지만,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한 소리와 함께 달콤함이 혀끝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TV장 아래 숨어 있던 그 쿠키 냄비는 나의 보물상자였다.

작가의 이전글어느 순간, 내가 낯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