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얼굴보다 먼저 낯설어진 건 나를 설명하던 말들이었다
나는 아직 나인데, 예전의 나는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를 설명하던 말들이 있었다. 빠르다, 금방 배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같은 말들.
낯선 환경에 던져 놓아도 금세 적응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방식은 늘 약간의 긴장과 함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들이 더 이상 지금의 나를 정확히 가리키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치 몸에 꼭 맞던 옷이 어느 날 이유 없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옷이 변한 건지, 몸이 변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전과 같지는 않은 상태.
거울을 보다가 가끔 멈칫할 때가 있다.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는데, 거울 속에는 엄마를 닮은 중년의 여성이 서 있다. 분명 나인데도 낯설다. 익숙한 얼굴인데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시선이 머문다.
예전에는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금방 이해하던 것들이 있었다. 새로운 앱,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흐름들.
남들보다 먼저 익히고 먼저 적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한 번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해야 이해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속도가 느려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 사소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아주 미세하게 밀려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딘가에서 내 차례가 조용히 지나가 버린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자꾸 묻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는 걸까.
예전의 방식으로 나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제 나는 무엇으로 이 자리를 채워야 할까.
젊었을 때 나는 나이 드는 모습을 꽤 낭만적으로 상상했다. 시간은 사람을 둥글게 만들고, 경험은 자연스럽게 지혜가 된다고 믿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우아하고 현명한 할머니로 늙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상상했던 나이 듦에는 이런 감각이 빠져 있었다.
내가 나를 설명하던 단어들과 하나씩 작별하게 되는 순간들.
익숙했던 장점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의 속도와 세상의 속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경험.
나는 예전처럼 ‘왜 살아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삶은 그저 이어지는 것이라는 쪽에 더 가까워졌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고, 살아가는 동안 조금씩 변해 간다는 사실을 이제는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것은 하나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이 될지를 상상하며 살았다면, 지금은 이미 지나온 나와 작별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
나이 든다는 건 ‘이전의 나’를 보내주며 또 다른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예전보다 조금 천천히 걷는다.
더 빨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발견하는 것들을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