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미리 내 마음 돌보기
지난달 원데이 명상 클래스를 다녀왔다. 아는 사람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신청링크를 보았는데 '스타트업 리더/대표'들을 위한 마음 챙김 클래스라는 제목에 시선이 꽂혀 회사를 차린 지 이제 두 달 차인 내가 들어도 될까 잠시 고민하다(다른 리더들에 비해 아직은 스트레스가 크지 않으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미리 극한의 상황에 가기 전 예방하는 것도 좋을 듯싶어, 그리고 늘 명상은 배워보고 싶었으므로 얻어갈 것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신청 및 입금까지 한큐에 완료했다.
회사를 시작하며 내가 요새 되새기고 있는 문장은
생각은 적게 행동은 빠르게, 이왕이면 빠르게 실패하고 정답에 더 가까이 가자
인데, 사실 지금보다는 회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스트레스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명상 클래스는 서촌의 호전다실에서 진행되었다.
호전다실은 여러 가지 수입 차를 유통(도/소매)하고, 차 테이스팅도 해볼 수 있는 공간인데 공간 자체가 주는 힘이 있듯이 골목 구비 안에 숨겨진 비밀 장소처럼 깊숙이 위치해 멋진 한옥 처마와 통창으로 된 내부 공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호전다실에서 명상을 하며 좋았던 점은 단계 단계마다 여러 가지 맛의 차를 맛볼 수 있었던 점이다.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 박지선 대표는 사실 명상이라는 게 꼭 눈을 감고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며, 일기를 쓰며, 독서를 하며 혹은 산책을 하며 어지러운 내 마음의 분비물을 가라앉히고 맑은 물이 떠오르는 시간을 기다리며 그렇게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어떤 행위를 하던 자신에게 집중해 자신이 어떤 감정인지, 지금 무슨 생각인 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기 돌봄'의 과정이라고 한다.
스타트업 리더를 위한 명상 클래스
스타트업 리더를 위한 명상 클래스라는 뾰족한 앵글은 명상을 진행한 진행자의 경험에서 나온 건데 그녀는 실제로 대학 졸업 전부터 다수의 회사의 창업 멤버 혹은 실제 창업을 하며 지긋지긋한 번아웃을 당연한 상황으로 받아들인 채 힘든지도 모르다 어느 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심리상담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헤매다 명상을 경험했고, 현재 또 명상과 관련된 창업으로 귀결되었다고 했다. 자신이 겪은 힘듦, 어려움, 스타트업 대표들이 갖는 고질적인 스트레스를 덜고 좀 더 즐겁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데에 본인이 도울 수 있다는 의미와 사명에도 감명이 깊었다.
구체적인 진행 과정은
1. 종이를 나눠 준 뒤 아래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다.
요즘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
왜 이 클래스 신청했는지, 얻어가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내 일을 사랑하는 이유
내 일에서 힘든 이유 - 이 부분은 아무래도 같은 스타트업 처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공유하고자 넣은 거 같았다
2. 차를 마시며 서로 작성한 대답을 나눈다.
4가지 종류의 차 - 백차, 청차, 홍차, 흑차를 마시며 돌아가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경청한다. 이때,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흘리는 게 아니라 <50:50 경청 법칙>으로 다른 사람을 내 프레임에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사람이 말할 때 내가 드는 생각과 내 마음에 귀 기울이기는 비중, 즉 다른 사람과 나에게 향하는 마음의 비중을 50:50에 맞추고 경청한다.
사실 50:50이 쉽지 않은 게 내 경우엔 다른 사람의 말이 공감되면 나도 모르게 나를 잊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공감이 안 되면 사실 딴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편견 및 나만의 잣대 없이) 동시에 그 사람의 말로 내 마음에 어떤 반향이 일어나는 지를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3. 그리고 명상이 이어졌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명상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여기서 호흡에 집중하는 건 들숨 날숨 주로 코와 인중에 닻이 있다고 생각하며 호흡에 집중하고, 그 호흡이 들어올 때 배나 갈비뼈가 움직이는 내 몸에 집중하고 마지막으로 부유하는 생각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굳이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기며 다른 생각을 하려 억지로 바꾸지 않고 나뭇잎이 강물에 떠 내려가듯 가만히 바라본다. 다른 생각이 들면 드는 대로 떠나보냈다가 다시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맑아지고, 무언가 개안했다고 해야 하나 명상 후 눈을 떴을 때 눈도 더 선명하고 모든 사물들이 더 선명해 보였다.
그리고 명상 때 드는 생각 등을 나누었는데, 사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이 처음이거나 많은 경험이 있지는 않았다. 박지선 대표가 얘기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한참 번아웃이 심할 때
이 정도로 힘들면 안 되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은 이것보다 힘든 것도 헤쳐 나가는 데 이 정도 힘들다고 징징 거리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기에서 틀린 점이 무엇인지 모두에게 물었다. 순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고 나를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라.
그녀의 대답은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한 것 - 사람마다 다 다른데 똑같은 기준으로 잣대로 나를 평가한 것
자신을 돌보지 않은 점 - 누구보다 나를 돌봐야 할 사람은 평생 나를 데리고 살 바로 나 자신인데 힘들다는 몸의 소리를 외면한 채 그저 남하고 한없이 비교하고 나를 축낸 것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자애 명상이 이어졌다.
자애 명상의 순서는 나 자신 - 내 가족 - 내 주변(친구, 회사 사람)에게 사랑을 보내고, 가능하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까지도 사랑을 보내는 것이다. 사랑을 보낸다는 것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박지선 대표와 함께 명상을 참여한 다른 스타트업 대표의 말에 따르면 식물에게도 좋은 말, 부정적인 말을 했을 때 그 기운이 전달되어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듯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보내면 그 사람에게 그 기운이 가 닿는다는 말에 공감했다.
작년부터 일상에 작은 것에 감사하는 습관을 들였던 나는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지고 결국 내 기분이 좋아지면 또 주변 사람에게 그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고, 그럼 또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싶고, 그렇게 감사가 선순환되는 것을 실제로 느꼈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보내는 것은 아직 옹졸한 내게 어렵지만 ㅎ
그리고 차담이 이어졌다.
많은 기업의 대표들 유명인사들이 하루에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명상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명상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지 직접 알아보고 싶어 참여한 클래스였는데 생각보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르거나 마음이 한순간에 평온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머리를 비우는 과정을 통해 어지럽게 떠도는 생각들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은 분명 있었다. 하루에 20분 이상 3주 이상은 명상을 해야 그 효과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이 후기를 쓰는 지금 벌써 3주가 지났는데 매일 실천하기는 여간 쉽지 않다.
그래도 멘탈 관리는 대표가 아닌 누구라도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 같다. 모든 답은 사실 내 안에 있고, 모든 문제도 사실 내가 만드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