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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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건강과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남았다. 갈 길을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길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으로서의 카오스! 그런데 반듯한 길이 사라지고 미로뿐이라고? 덕분에 길은 여행자들에게 나누어줄 기쁨을 숨겨둘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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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때, 내 딸이 스무 살인 지금이 아니고 내가 스무 살일 때, 까마득한 그 시절에, 아득한 그때에 이걸, 천 개나 되는 길이 있다는 걸, 삶을 사는 천 가지 방식이 있다는 걸,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나는 왜 당연히 결혼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키워야 하고, 늙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손잡고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에 가슴 찡하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했을까? 왜 모든 여자는 같은 길을 가야만 한다고 믿었을까? 시간의 차이를 두고 할머니처럼, 엄마처럼, 줄을 서서 그 길을 가려고 했을까? 왜 아무런 의심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으로 덜컥 나를 내던져버렸을까? 무식해서 용감했던 걸까?
지금의 나에게 다시 물어보자.
지금은 알고나 있는지? 천 개의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천 가지 방식으로 나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있다면 감당할 수는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그때 그 스무 살의 나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멀어져 있기는 한지.
멀어지고는 싶은 건지.
혼란스럽다.
주변 환경에서, 수많은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안다.
변화가 필요했다.
결혼해서 20년쯤 살았으니까 1년쯤 쉬어도 좋다고 나를 허락했다.
바꾸고 싶었다.
일과 결혼을 정리하고 사는 곳을 바꿨다.
아이들이 초중고를 다닌 오래된 곳을 떠나 이사를 했다.
어느새 다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깊어졌다.
시간을 다르게 썼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잤다.
시계를 보지 않고 생활하다 보니 낮밤이 바뀌었다.
야행성이었나 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만남은 늘 숙제다.
거울을 보듯 누군가를 만나면서 나를 본다.
외면하고 싶은 얼굴들을 지워간다.
봄에 시작된 독립이 가을을 맞는다.
조금 더 쉬어도 좋다고 나에게 알려준다.
오래 쉬어도 된다고, 그냥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나를 더 자주 만나보라고.
조금 긴 여행을 계획했다.
가을의 제주를, 겨울의 히말라야를.
비행기 표를 예약하면서 머리끝이 쭈뼛 곤두서며 식은땀이 솟았다.
이제 시작되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꿈꾸던 어떤 순간이다.
해보는 거고, 가보는 거다.
천 개의 길이 펼쳐지겠지.
죽기밖에 더하겠나.
자유, 라면 다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