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맞아?

이틀째

by 미영

어제는 긴 하루였다

새벽부터 전쟁을 치르고 오후엔 친정에 갔다가 오늘 새벽에 집으로 왔다

무언가 끝이 난 채로 알 수 없는 뭔가가 시작되었다

이번 싸움의 상대는 누구이고 언제까지이고 승패는 어떤 의미일까?


어제 아침, 길길이 날뛰다가 뛰쳐나간 남편은 장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관문 밖에서 한참을 통화하다가 들어와서는 나를 바꿔주었다

뭘 어쩌자고 장모를 찾았는지 모르지만 놀란 엄마와 통화하느라 남은 힘을 다 썼다

불편한 엄마가 집으로 오겠다고 하는 걸 말려서 내가 가겠다고 하고는 끊었다


몸싸움으로 팔과 목이 아프고 생리통까지 겹쳐서 온몸이 전쟁 중이다

게다가 몸을 피할 겸 찾아간 친정은 차라리 눈을 감고만 싶었다

헤어지고 싶다는 딸을 엄마는 왜 말렸을까?

얼굴에 멍이 든 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딸이 어떻게 살기를 바랐을까?


돌아가신 아빠 대신 딸 없는 사위라도 필요했던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호의적이지 않은 엄마와의 대화는 괴롭고 슬펐다

내가 불편했던 건 아빠에게 맞고 살던 엄마에게 내 모습을 들킨 거였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참을 수 없이 참담했다


나도 내 딸에게 그랬을까?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의 폭력으로 불안해하는 딸에게 그냥 참고 살라고 했을까?

맞을 짓을 했으니 맞을 수 있다고, 남자는 다 욱한다고, 안 참으면 어쩔 거냐고, 앞으론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요령껏 살라고, 남자는 다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그랬을까?


퇴근하고 들른 남편에게 엄마는 술상을 차려 주고는 나를 건네주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으니 애들 봐서라도 서로 참고 양보하며 살라고 했다

딸이 잘못했다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하니 사위가 용서하고 더 잘해주라고 했다

애들 다 크고 나이 먹으면 부부 말고 누굴 의지하며 살겠냐며 싸우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장모에게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칭얼거리며 울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마누라가 살림도 안 하고 밥도 차려주지 않아서 혼자 챙겨 먹느라 힘들다고 했다

돈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렇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느라고 바쁘다고 했다

집에 같이 있어도 신경도 안 쓰고 무시하는데 그래도 다 참고 산다고 했다


남편은 어디 가서도 못할 말을 장모님 앞이니까 한다며 거리낌 없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분하고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생각만 해도 화가 나고 미칠 것 같다고 했다

장모는 괴로워하는 사위를 위로하며 힘들지만 그래도 어쩌겠냐고 더 잘하라고 했다

사위가 잘 해줬으면 딸이 왜 딴 맘을 먹었겠냐고 더 아껴주라고도 당부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고 덕분에 마무리는 훈훈했다

목숨이 오락가락했던 어제 하루를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술자리를 정리하며 잠자리를 챙겼지만, 정신은 멍했고 나는 그저 숨만 쉬고 있었다

코를 골며 잠든 남편은 새벽에 깨어 가자고 했고 엄마가 깰까 봐 서둘러 나왔다


엄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말도 글도 헛되고 덧없지만 뭔가 정리하고 싶다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의 이전글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