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남편이 친구를 만난다면서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엉엉 울어버렸다
이 눈물은 뭘까?
남편과 같이 있으면 머릿속이 멍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꼼짝없이 숨만 쉬고 있다
겁에 질려 무기력하다
무기력을 느끼는 것도 힘인가?
무기력을 느낄 힘은 남았는가?
힘이 남았다면 아직은 건강한가?
그 힘으로 나를 더 힘들게 하는가?
건강하면 왜 도망치지 못하는가?
건강하면 왜 피하지 못하는가?
건강하면 왜 화내지 못하는가?
건강하면 왜 싸우지 못하는가?
내 안의 가부장과 차별과 욕망과 사소함과 약함과 못남과 어리석음과 부끄러움과 무지와 휘청거림과 뒤뚱거림과 방황과 쓸쓸함과 답답함과 부질없음과 헛됨과 연민과 동정과 좌절과 우울과 무기력을 왜 돌보지 못하는가?
혼자이고 싶다
눈을 뜨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원한다
오래된 병이다
아이들까지는 함께할 수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동안의 욕심일까?
아이들마저 놓으면 후회할까 봐?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아이들은 사랑 이전에 책임감이다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내게는 그나마 닮은 마음이다
흉내 낼 수 있는 몸짓이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는 동안의 내 숙제이기도 하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멍하다
멍한 정신을 차리고 싶다
부모 형제는 벗어났고 이제는 남편 차례다
언제까지 남아서 서로를 상처 낼 것인가?
이미 끝난 관계다
지긋지긋하다
아무런 미련이 없다
더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
참혹한 전쟁이다
하루하루가 더없이 다이나믹하다
살아있는 증거들로 꽉 찼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