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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Aug 22. 2019

어른이 된다는 환상

스스로 철들었다 느끼는 순간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지도

빨리 어른이 되길 원했던 시절이 있다. 한 살이라도 빨리 자라고 싶어, 설날이 되면 배가 불러도 떡국을 두 세 그릇씩 먹었다. 그 미련스러움은 나이를 먹는 일이, 어른이 되는 일이 떡국 먹기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어린 나의 세상은 내가 모르는 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중에서는 아이가 알아서는 안될 것들도 있었다. "해도 좋다"라는 말보다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그 비율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원하는 것을 하고, 

불확실했던 것들은 명료해지고, 

위태로웠던 것들이 단단해진 자아의 반석 위에 서서 균형을 이룰 줄 알았다.


그 어떤 것도, 심지어 나 조차도 책임지지 않았던 시절, 나는 "자유로운 어른"을 꿈꿨다. 


출처 : Unsplash


그리고 난 어른이 되었다. 

나는 원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데에 급급하고

어제까지만 해도 명확하던 것이 오늘은 모호하게 느껴진다.

나의 자아는 여전히 불완전하여 흐물거리고 날마다 변형되어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지 못했고

이상을 쫓을 지, 현실과 타협할 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 번복하며 감정의 혼란을 자초한다.


나이를 먹으면 덜 할 줄 알았던 방황은 나이만 먹는다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고,

또 한 번의 실패를 감당할 수 없게 된 나는 한껏 움츠려 몸을 사리게 되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분명한 나의 것이 생길 줄 알았는데,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차도 모르게 되었다. 


선택에 뒤따르는 책임감의 무게는 때때로 나로 하여금 '자유'가 그것과 맞바꿀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나의 가장 솔직한 마음,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간솔한 생각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은 가급적 오지 않았음 싶고,

할 수 있다면 회피하거나 은둔을 택하고 싶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언제쯤이면, 내가 되고 싶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나의 어리석음에 부끄러울 때가 많고, 나의 유치함에 놀라곤 하는데,

서른이 넘도록 스무 살의 철없음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이런 나의 속마음을 확인할 때면,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만들어 낸 '환상'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어리석음과 유치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추고, 세련되게 포장할 줄 아는 사회적 기술만 늘어나는 것이라고.


스스로 철들었다 느끼는 순간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출처 : Unsplash


설령 그런 순간이 올 수 없다고 해도,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랜 방황이 끝나는 지점은 있었으면 한다.


그 지점에 섰을 때, 외력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쥐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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