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作 - 인생
인생
인생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이 읽을까.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은 그 제목에 맞게, 중국의 근대를 산 한 인간의 서사를 그대로 담았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결핍'이란 것을 모르고 "도련님"으로 자란 푸구이. 그는 여자와 도박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고 청춘을 낭비했으며 가산을 탕진했다. 하루아침에 지주의 아들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한 그를 보며 우리는 운명의 얄궂음을 목격한다. 이념과 사상이 신격화된 시대에서 별안간 전쟁터로 끌려온 푸구이와 그가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힘과 운명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에서 공산당이 승리를 거둠에 따라 중국은 빠르게 공산화되고 푸구이 집안의 자산을 빼앗아 지주가 된 인물은 당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위세가 꺾여 처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인간사 새옹지마의 이치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푸구이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고달픈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지불식간에 전장에 끌려와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누구를 위해,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추위와 빈곤을 견뎌야 했고 소중한 이를 병마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는다. 찰나의 안정과 행복을 누리지만, 인생이란 놈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푸구이의 삶을 뒤흔든다. 그가 겪은 중국 내전, 잠깐의 풍요를 맛보게 했다가 이내 극심한 빈곤 속으로 민중을 던진 공산당 집권 초기의 양태, 집단 광기의 무서움과 해악함을 보여준 문화 대혁명과 홍위병들. 푸구이를 삶을 뒤흔든 많은 사건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중 푸구이의 의지가 반영된 부분은 극히 미비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전시물자로 솥을 공출해가야 한다. 앞으로 식사는 마을 급식소에서 하면 되니 걱정 말아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엌에 철이란 철은 다 쓸어가는 관리에게 푸구이가 "나는 내 집에서 밥을 지어먹겠소"라고 할 수 있었을까? 눈앞에 총을 겨누고 '집에 가고 싶으면 가라'라고 말하는 중대장에게 '늙은 어미와 처자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오'라고 할 수 있었을까? 푸구이가 겪어야 했던 변화 중 대부분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였다.
대단히 선하지도 그렇다고 치가 떨리도록 악하지도 않은, 고난을 뚫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만큼 영웅적이지도, 대놓고 속물적이지도 않는, 그저 가족의 건강과 배곯지 않을 식량을 바라는 평범한 한 인간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휩쓸리고 집단과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푸구이의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고, 그가 어찌할 수 없는 규모로 그를 덮쳤으며, 그는 자신에게 억지로 주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꾸역꾸역 살아간다.
나는 이 책에서 정녕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지 보았다. 우리 역시, 우리 개인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지고 매일매일의 삶을 아등바등 살아간다. 부당하고 불의한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그래도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살아가는 것, 세상이 아무리 지랄 맞더라도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