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좀 이상해. 내가 듣는 음악 사람들은 이해 못 해."
그와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은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상하다는 그, 대중적인 음악이 아닌 것들을 듣는다는 그. 호기심이 생겼다. 침대 위에서 그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변태적인 행위나 판타지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감자칩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리며 상상했다. 내가 그의 위에 올라앉아 저 얼굴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가 침대위에서 뱉어낼 말들을. 거칠 것 없이 서로의 몸을 탐하는 우리를.
무섭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내 몸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은 내가 만난 그 어느 남자보다 부드러웠다. 날카로운 유리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내 몸을 쓰다듬고 천천히 혀를 움직이는 바람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 겉으로 센척하면서 부드러운 구석이 있는 건가. 섹스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첫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첫 여자, 나의 첫 남자.
어디서 잤고, 어떻게 애무했으며, 어떤 기분이었는지. 잠시 나의 첫 상대를 떠올렸다. 어찌할 줄 몰라 부끄러워하던 내 모습과 경험이 없어서 서툴렀던 그때의 섹스를. 섹스라는 것이 그저 몇 번의 키스에 애무에 피스톤 운동만 하면 다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섹스를. 추억을 떠올리는데 묘하게 내 몸은 한껏 뜨거워졌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두 개의 '나'라는 자아가 시공간을 초월한 듯 드러났다.
과거의 첫 남자와, 지금 내 눈 앞의 남자. 과거의 내가 지금 이 부드러운 손길을 가진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인지, 현재의 내가 과거의 첫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인지 무의식 속에서 뒤죽박죽이 된 이 섹스는 마치 네 사람이 한 침대 위에서 섹스를 나누는 듯했다.
내 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 역시 나에게서 자신의 첫 여자를 떠올렸으리라.
나는 과연 누구와 섹스를 나누었을까? 그는 과연 누구와 섹스를 나누었을까? 우리는 무엇과 섹스를 한 것일까?
물음표만 남은 섹스였지만 신기할 정도로 즐거웠던 섹스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