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가 꽃 핀 그 이후

by 이상찬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후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나는 그저 가족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밥 먹는 데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거실의 TV에서 뉴스가 틀어져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그 어렴풋한 소리에 어떤 이야깃거리가 생각났는지 침묵을 틈타 조용히 입을 여셨다.

“이번 태풍이 정말 강하긴 했지.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더라. 강물이 넘쳐나서 강 근처 것들은 다 떠내려가 버리고 그래서 야채값도 훌쩍 뛰었잖니. 그러니 반찬도 아껴 먹어야 할 판이야. 아 참! 이 기사 들어봤니? 임신한 소가 물에 갇힌 집 지붕에서 이틀 동안이나 악착같이 버텼다는 거야. 그러곤 구출되자마자 새끼를 낳았다고 하던데... 소의 모성애가 진짜 대단하지 않니? 역시 짐승이 사람보다 나아.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거든. 이 인간 녀석들은 은혜 갚을 줄도 모르고 건방진데다가 사기도 잘 치고…”

아빠는 소의 모성애를 더욱 뚜렷이 강조하고 싶으셨는지 그 뒤에 인간의 어두운 이면들을 끊임없이 나열하셨다. 솔직히 요즘 세상이 각박하긴 하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인간의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내용에 대한 몇 문장이 추가된 뒤 아빠는 소의 모성애를 한 번 더 강조하면서 말을 마무리 짓고 계셨다.

그때 아주 갑작스럽게도,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시선은 다름 아닌 우리 젓가락에 걸려있는 소고기 요리로 향하고 있었다.

이 먹음직스러운 소고기가 ‘소의 모성애’와 겹쳐지면서 상황 자체가 묘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모성애로 꽃핀 순간들 이후의 저 소들은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속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