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건 대리석이 아니라 내 월급과 시간이었다.
"사장님.
저 결혼도 안 했는데 남편이 어떻게 있어요.
제가 집주인인데
가격 마음대로 내리시면 안 되죠!”
“남편분이 오셔서 직접 내놓으신 거예요.
가격 내리라길래 남편인 줄 알았죠.
남편 아니에요?”
헛웃음이 났다.
시세보다 월세가 25만 원 싸게 나와 있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단, 한 사람.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나와 달리
전문직 임차인은 지나치게 당당했다.
“싸게 내놔야 빨리 나가죠.”
“계약 기간도 안 끝났는데
마음대로 집을 내놓으시면 어떻게 해요?
월세도 시세대로 내놓으셔야죠.”
직업도 좋고 매너 있을 거라던
중개업소 사장님의 소개와 달리
임차인은 계약 연장 시점마다 말을 바꿨다.
전세로 돌리고 싶다며 믿고 기다려달란 말은
재계약 일주일 전,
시세보다 조금 떨어졌다며
금액을 낮춰야 한다는 말로 바뀌었다.
결국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계약은 월세 증액으로 바뀌었다.
월세가 두 배 이상이 되자
월세는 제때 들어오지 않는 날들로 채워졌다.
여유 있는 집주인이 아니었던 나는
대출 이자를 오직 내 월급으로 감당해야 했다.
월세가 늦어질수록 스트레스는 쌓였다.
이성을 잃어가던 어느 시점,
새벽에도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는
나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저 임차인 선배인데요.
양쪽 다 부동산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뭐가 문제인지 저한테 얘기해 보세요.”
웃음이 났다.
이런 일을 이렇게 쉽게 겪는 건가.
임차인은 나와 협의도 없이
새로 발령 난 곳에 전세 계약을 해버린 상태였다.
“저희가 부동산을 잘 몰랐어요.
가고 싶던 곳에 발령이 나서 급한 마음에…”
배려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배려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미혼의 여자라는 이유로 쉽게 여겨지는 태도.
새벽마다 걸려오던 전화들,
그동안 쌓여온 모욕적인 말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다행히 시세대로 새 임차인이 나타났다.
아이 둘을 키우는 가족이었다.
“필로티라 아이 키우기 좋을 것 같아서요.”
분양 당시 가스비 많이 나오고 춥다며
아이 키우기 안 좋은 집이라던
그 필로티가 맞나 싶었다.
이사 날,
새집이라 별일 없을 거라던
공인중개사 사장님의 말과 달리
집은 가전까지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순간,
새 임차인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욕실 세면대 대리석이 깨져 있어요.”
2년 반을 산 집이 너덜 해져 있었다.
구축 아파트 수리비를 들이밀며
나를 가르치려 들던 중개사,
깨진 대리석을 외면하던 임차인.
내 돈으로 고친 화장실의
매끄러운 타일을 보며 웃음이 찼다.
날 지켜줄 거라 믿었던 아파트라는 꿈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깨진 건 대리석이 아니라 내 월급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