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저주. 너 닮은 딸 낳아봐.
"아이보다 우리가 먼저야.
나는 네가 더 중요해"
왜 아이를 갖고 싶단 말 안 해?
내 섣부른 물음에
남편의 배려가 담긴 답이 돌아왔다.
남편은 말없이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지만
내게는 작은 생명을 책임지는 선택의 무게였고 공포였다
나이 많은 우리가 아이를 갖는 건 쉽지 않아서?
아이를 키우며 오는 천문학적인 청구서 때문일까.
또다시 돈 앞에서 작아질까 봐.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었다.
결핍은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알기에
난 일을 쉬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도
집에서 일할 수 있게 준비한
나의 지혜로움이라 믿으며,
우리의 행복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계속 누릴 거라 착각했다.
나이 많은 40대 신혼부부는
여행도 쉽게 갈 수 있었다.
늘 힘겹게 은행에 주기만 하던 내가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기쁨은
내 얼굴에 대한 보상 같았다.
내 집이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면 충분하다는 남편과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여유의 공포를 대비하자는 나와 의견이 엇갈렸다.
"40대에 아이 낳는 게 가능해?"
매너 없는 사람의 말 때문에도 아니었다.
가난한 엄마.
약한 엄마
무능력한 엄마.
내가 엄마를 보듯
내 아이가 나를 그렇게 볼까 봐 무서웠다.
용기를 내어 병원에 간 날.
"40대에 초산이시네요?
여길 오실게 아니라 난임병원에 가보세요."
2시간 가까이 기다려 들은 건
의사의 눈길조차 없는 답이었다.
"자궁 나이도 어리고 건강한데요?"
라는 내 질문에 작은 동요도 없는 의사의 말 위로
가식적인 엄마의 말에 가시가 박혔다.
"아이 소식 없어?
너 닮은 애 낳아 키워봐. 행복하지."
"엄마는 나처럼 살지 말라며!
근데 왜! 늘!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하라고 강요해!"
"엄마처럼 살라며.
엄마 소원대로 됐어.
그러니 맘껏 좋아해."
전화기를 던지듯 끊고
나는 무너졌다.
성벽 안쪽부터 곰팡이가 피어오르며,
온몸이 흩어지듯 그렇게 무너졌다.
그날 이후 난 병원 가는 걸 멈췄다.
가난을 이긴 나의 결핍이 성벽을 세우게 했다.
하지만,
엄마의 저주가 담긴 그 성벽 안에서
결핍이 자식을 자식이 아닌
시부모로 보게 할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