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한테 남편이자 딸이었어."
그 말이 지옥의 문인지
그때는 몰랐다.
"네가 잘해야지."
"너라도 해야지."
엄마의 말은
어느 날부터 뼛속까지 박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으이구. 저거 저거.
누굴 닮아 저러는지.
지 동생처럼 가만히 있으면 편할걸.
뭐가 궁금하다고 다 헤집어놔.”
시집살이로 하루가 버티는 삶이었던 엄마에게
내 호기심은 버거움이었고
시부모를 닮은 내 얼굴은 절망이었을 거다.
“저 말할 때 입 좀 봐.
어쩜 지 할머니랑 저렇게 똑같니."
엄마는 딸을 키우는 게 아니라,
딸에게 비친 시댁 식구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딸을 보는 엄마의 따듯한 눈빛은
내가 자랄수록
먹잇감을 노려보는 눈빛이었다.
딸이 아니라
남편이자 시부모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난 웃음을 잃었고
혼자 있는걸 더 좋아했다.
“엄마.
이건 여우가 굴을 파 놓은 건가 봐.”
“애가 바본가.
그냥 구멍보고 뭐라고 하는 거야.
지가 특별한 줄 알아.”
늘 고개를 떨구고 가던 내가 있었다.
"넌 어릴 때 참 잘 웃었는데.
언제부턴가 네가 웃지 않더라."
이모의 안타까운 말이 허기진 마음을 채웠다.
"어릴 때 잘 웃었지.
배시시 웃으면 얼마나 예뻤는데.
데리고 나가면 아기 예쁘다고 난리였어."
누굴 닮은 건지 커갈수록 고집만 세고.
말도 잘 안 하고.
다른 집 딸들은 생글거리며 말도 잘하던데.
쯧쯧”
누굴 닮아 고집만 세냐는 비난 속에,
오래된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낯선 아이는
나에겐 너무 먼 존재였다.
내 아이가 놀이터에서 내뱉던 "꺄르륵" 소리 위로,
겹쳐오는 엄마의 "쯧쯧" 혀 차는 소리.
순간 난 멈춰버렸다.
“이게 나라고?”
기억나지 않는 많은 시간들.
나를 보던 엄마의 뿌듯함은
언제 절망으로 바뀌었던 걸까.
엄마의 날 선 목소리와 매서운 눈앞에는
늘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내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눈빛을 가장 먼저 배운 나.
난 엄마와 같이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인가.
내 선택이 아이의 웃음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