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게 싫다

양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착한 아이 프레임

by 스윗

내 아이가 양보하는 착한 아이라는

소리에 기분이 착잡해진 건 왜일까.


어릴 때부터 듣던

"네가 잘해야지.

동생에게 양보해야 착한 누나지."

라는 말이 떠올라서였을까.


"어머님
아인이 들어와서 조금 울고 지금은 잘 놀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기특한 우리 아인이.


선생님이 보낸 사진에는

웃고 있지만 울어서 눈가가 빨개진 아인이와

그 옆에는 늘 울고 있는 예나가 있었다.


늘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아이였던지라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했던 터라

다행이다 싶다가도,


"예나가 계속 울어.
마음 아파."

혀 짧은 소리로 친구를 걱정하는 모습에

짠하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아인이는?
아인이는 어땠어?
힘들지 않았어?"
"힘들었쪄.
엄마가 보고 싶었쪄.
근데 꾹 참았쪄.
예나가 울어서."

순간,

싫다. 너무 싫다.


왜?

나의 아이는 그 순간에도 참아야만 하지?


내가 어른이 맞는가. 예나를 예뻐하던 예전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한때는 너무나 귀여워하던 아이였는데. 내 아이의 희생만 보이는 야비한 모성 같았다.


속으로 경멸했던 예나 엄마와 다른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어린아이를 향한 나의 야비한 마음이 싫었다.




"어머님
아인이 칭찬해 주세요.
양보도 잘하고요.
우는 친구 있으면 울지마 하며 손에 든 장난감 들고 가 주네요.
기특하죠."


"기특하다뇨.

전 씁쓸하네요."


선생님의 칭찬에 말하고 싶은걸 속으로 수십 번 삼킨듯하다


좋으면서도 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걸까.

양보만 한다니

기특하면서도 싫었다.


만만한 아이가 될까 걱정됐다.


내 아이를 두고 말하는

"아우, 착해라"

이 말이 싫었다.


넌 착해야만 한다는 가스라이팅 같아서.


왜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아인이를 재우고 남편에게 푸념을 했다.


현실적인 남편은

"내버려 둬.
엄마가 유난이면 안 된다고 내가 말하잖아.
지가 당하고 뺏겨봐야 지키는 걸 배우지."
"어떻게 내버려 둬.
늘 혼자 참고만 있는 앤 데."


엄마와 아빠의 결의 다름이 이렇게나 큰 건가.


머리로는 아는데

엄마인 난 속상한 마음에 속이 뒤틀린다.




예나의 울음소리보다,

참아내는 내 아이의 침묵이 싫고 또 싫었다.


착한 아이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편리한 환상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그 환상의 조력자가 되지 않기로 했다.

내 아이가 만만한 아이로 자라게 내버려 두는 방관은 오늘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