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에 대한 단상

죽지 않을 만큼의 절망, 잃지 않을 만큼의 희망

by 밀밭

와 미나리.

나 이거 왜 이제 봤지

라고 생각하다가

이제 봐서 다행이다 곧바로 안도감이 들었다.

육아에 정신이 없어서 집중할 수 없었다면 그저 그런 영화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난 미국에 이민 간 친척들이 많다. 사촌오빠들의 아이들은 네이티브다. 그들은 한국말을 알아듣지만 말은 영어로 했다. 대학 때 연수 갔을 때 그들은 7살 8살이었는데 수능을 다 맞은 영어실력이지만 그들과 영어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Aunt"를 7살 조카에게 여러 번 발음 교정을 받았지만 조카가 끝내 포기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때는 그들이 영어 잘해서 좋겠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작년에 초등 고학년 아이들 둘을 데리고 다시 미국에서 살 때 우리 옆집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아이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한국어를 더 잘하면 좋겠다, 한국어는 완벽하게 하고 영어를 잘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창 로제의 ‘아파트’가 여기저기 나오고 뉴욕 타임스퀘어에 <오징어게임>이 도배되어 있을 시기다. K컬처가 힘이 생겨서 그런지 내가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무늬만 한국인이라는 게 안타까워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영화 속 가족이 아칸소 넓은 땅에 도착해(정말 도시도 시골도 아닌 그냥 말 그대로 땅이다. 남편은 흙을 좀 보라고 이 기름진 흙 때문에 이곳에 온 거야라고 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는데.. 아이가 평상시에도 조심해야 할 건강상의 핸디캡이 있고 아내는 병원이 멀어다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남편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하고 아내는 금방 옮길 거라며 견디는 삶을 시작한다.


병아리 감별사는 닭공장과 같이 한국인의 미국 이민자들이 종종 선택하는 업종이고 그걸로 영주권을 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한국인은 그런 섬세하고 힘든 일도 잘 참고 견디기 때문에 인정받는다고 들었다. 내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 그 두 노선얘기를 들었다. 치킨을 먹으며 수능 1등급인 나에게 그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미국 (이미) 시민권자의 목소리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병아리공장에서 손 빠른 아빠가 작업을 빨리하고 심심해하는 아들을 데리고 밖에 나와서 하는 대화도 생각해 볼 만하다. 공장 굴뚝에 검은 연기를 보며 아들이 묻는다.

아빠 저게 뭐예요?

응.. 수놈들을 저기서 폐기하는 거야..

What is “폐기”?

말이 좀 어렵지? 수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거야. 알았지?

......... 이 얘기를 아빠와 아들, 두 남자가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부부는 토네이도알람이 오자 저녁에 언성을 높여 싸우는데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가, 그걸 억누르며 싸우지 말라고 쓴 종이를 접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장면이... 너무 섬뜩해서 심호흡을 했다. 이 영화... 나만 리얼한가. 나에게만 유독 거울인 건가. 서늘한 컨테이너 박스집 티브이에서 토네이도 경보가 주의로 바뀔 때... 모든 호흡이 나의 내면에 있었다. 아내의 귀에 있던 진주귀걸이 빼고 모든 것이 나였다.

영화 중간에 바람에 들판의 이름 없는 풀들이 흔들리며 음악이 깔리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알았다. 아,... 내가 요즘 보고 싶은 영화는 이런 영화구나. 그 ‘이런’ 영화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더듬었다. 서정적이고 여백이 있고 느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영화.....

여기까지가 영화 13분 본 단상... 고작 13분 만에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영화라는 거다.



영화에게 수여하는 상이

생각하게 함

감동을 줌

현실적임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함

현실을 견디고 미래로 나아가게 함이라면

이 영화는 가능한 모든 상을 다 받아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도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브레인포그..

그 상태였던 거 같다.


일단 가장 눈에 보이는 부분부터 말을 한다면

이곳에 나오는 여섯 명

가족 네 명과 할머니와 외국인은 연기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그냥 거기에 존재한다

그래서 연기력을 극찬하려 한다.

난 남주를 버닝에서 조연으로 먼저 봤는데

이 사람의 무게와 색이 더 옅어지거나 짙어져 이 순서도 괜찮았다. 한예리는 그냥 조금 더 절제된 나 같았고

아이들은 미국에서 흔하게 보던 조카나 이웃집 아이들 같았다.


이영화는 한 가족 이야기지만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관통하는 한 존재가 할머니다.

아이는 아팠고 약했는데 할머니가 한약도 달여주고 더 이상 가면 위험하다는 곳까지 데리고 다니고 엄마아빠는 절대로 넘지 않을 안전선을 넘나들며 아이를 단련시킨다.

그것이 도전을 목표했는지 무지했는지 부주의했는지는 말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도움이 됐는지 되지 않았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우린 알 수 있다. 아이가 훨씬 건강해졌고 적어도 도움이 안 되진 않았을 거란걸. 아이 부모는 그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용기보다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나 또한 건강상 핸디캡이 있는 아이를 자유롭게 밖에 내놓지도, 남의 손에 맡기지도, 하다못해 아빠가 데리고 가겠다는 야구장에 한번 맡겨본 적 없다. 그런 엄마는 이 영화를 뿌리 깊게 볼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곧잘 욕설을 내뱉고 때론 귀찮아하지만

아이가 다치거나 무서워할 땐 어김없이 힘껏 고함을 지르며 누가 그래! 누가 우리 아이를 무섭게 해~~!!! 누가 누가!!!! 라며 혼을 내줘 나조차 할머니품에 안겨 위안을 갖게 한다.

꼭 우리 할머니가 그러던 것처럼..


사실 이 영화에서 미나리 씨앗을 심고 미나리가 자기 마음대로 자라고 물을 길어오고 또 마무리되는 그 미나리밭은

삶의 중심에서 벗어난 공간이지만 삶의 본질을 말한다.

(고 느꼈다)

거기서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또 내가 느끼게 된 인생의 의미가 있다.

인생은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안될 때가 많지만 뜻하지 않게 삶의 한 자락이 주변에서 피어나는 것....

뱀이 나오자 손자가 돌을 던져 위험을 벗어나려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두라고 한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안전한 거라고..

모든 주제가 미나리밭에 있는 셈이다.


할머니가 와서 다 망했다며 다시 가라고 소리치는 손자의 말에 슬며시 동조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들다가도

할머니가 와서 많은 걸 잃으면서도 더 중요한 것을 얻는 이 영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영화가 끝날 때 미나리가 땅을 뒤덮고 있다는 엔딩에 대해 어디선가(아마도 영화 리뷰하는 프로그램에서) 본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던 장면처럼 흐드러지게 뒤덮은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딱 그 정도.. 죽지 않을 절망, 잃지 않을 만큼의 희망 딱 그 정도의 미나리 밭이었다.

이 미나리들은 창고를 모두 태우고 몇 년의 피땀이 증발한 후에 얻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견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었다. 인생이 그렇듯이..


과하지 않은 표현, 주제, 표정들, 색감, 온도..

모든 것은 우리 삶의 양면을 빛이 오가는 시간별로 담담히 담고 있었다.

말해지지 않는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영화라 밭에 놓인 둥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거나 끝까지 쫓아 무언가 종지부를 찍는 영화가 아닌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자에게 강력 추천하는 영화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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