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내는 소리

트라우마에대하여

by 밀밭

창문틈의 미세한 간극이 있다는 거다

덜컹거리며 창틀이 흔들리는소리

휭 휘잉 휘이이이이이이잉

높고 낮은 음역대를 아우르며 시나브로 나의 긴장감과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창문이 깨지진 않을까

깨진 창문이 방으로 날아오진 않을까

꼭 극단적인 상상의 언어를 쓰지 않더라도

나는 사실 바람소리를 처음 인식한 순간

이미 상상은 끝까지 갔다

이세상에 빛보다 빠른 건 상상력


터무니없고 과장되어 보이는 이 불안은

사실 초3때 겪었던 나의 실화에 근거한다


그 날은 엄마가 집에 없을때였다

집은 복도식아파트였는데 여름엔 5,6,7,8호가

다 동갑인 친구가 있거나 한살 위아래가 있는 또래들의 집이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서로 문을 훨쩍 열어놓고 니집내집 하며 서로를 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선풍기도 거의 없고 부채와 수박과 등목으로 여름을 때우던 시절이라 자연풍을 맞이하려 그런건가 싶다

그날도 우리집 현관문과 베란다 창문은 훨쩍 열려있었고

나는 안방에서 친구와 놀고있었다


휭 휘잉 이런 소리가 났었다

바람이 많이부니 문을 닫아야겠다

이런 터무니없이 상식적일거 같은 생각이

초3에겐 잘 들지 않는다

아이들의 판단력을 무턱대고 믿으면 절대로 안된다

바람이 너무 불어 안방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얼핏 했던거 같다 그생각은 나는거 보니 너무 심해졌을무렵 현관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맞바람이 너무 강하다 보니 의지보다 포기가 컸던거같다


그러다 와자창창창창...휭~ 휭휭 휭...

............

무자비했다

인정사정 봐주는것이 없다.


모든 소리가 끝나기 전까지 나랑 친구는 완전히 얼음이었다

동그랗게 뜬 눈조차 깜빡일수 없었다

한바탕 보이지않는 힘이 휩쓸고 간후 방문을 빼꼼 열였을때

그 충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 같다

온 집안이 유리투성이인....

현관문을 닫아야하는데 신발도 없이 걸어 나갈수도 없고

방문을 걸어잠그고 엄마가 오기만 기다렸던 그날이 생생하다 (이와중에 같이 있던 동지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나는거 보니 동지가 있다는 거 자체도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 수준의 공포였던듯...)

엄마가 얼마후 들어오며 나오지말라고 소리친 기억(이미 몇시간째 갇혀있는 나에게), 정신없이 치우는 엄마에게 물고기가 괜찮냐고 여러번 물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신발을 아마 가져다 줬던거같다

그러니 그 끔찍한 광경을 날것 그대로 목격했을 것이다

거실에 벽돌을 쌓아 두꺼운 비닐로 만든 제법큰 연못같은 어항이 있었는데 손바닥 세로반만한 물고기들도 유리파편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때 다들 죽은건 아니다 물고기가 한꺼번에 몰살당한 트라우마는 후편에..)

쇼파며 티비며 거실에 있는 모든 곳은 유리파편이 있었고

빨래를 걸어놨었는지 몇개는 바닥에 널브러져있고

몇개는 현관통해 아마도 날아갔겠지

그렇게 큰 베란다 창문이 없었다

이렇게 하찮은 게 집이라는 테두리를 유지하고 있는게 새삼 놀라웠다


지금생각해도 현관문을 닫으러 용기내지 않은 내가 기특하다

집이 유리파편을 뒤덮은 것도 집에 혼자있던(엄마아빠없이) 최악의 현실이었지만 그 후 더 나를 극단으로 몰고 간건

내가 그순간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면... ?

이라는 상상때문이다..살아서 유리파편의 방패가 되는 그 순간을 몇번정도 상상했을까

인간은 하지말아야할, 굳이 할필요없는, 해서 일말의 도움이 전혀 안되는. 그런 상상을 얼마나 하냐 이말이다.

글은 여기서 줄이지만 내가 상상할수 있는 19금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은 초3때 수위를 넘었다


나의 유리창깨지는 공포는 이날 이시점에 기인한다

다커서도 태풍매미때와 한두번쯤 더 강력한 태풍예보와 함께 창문에 태이프를 x로 붙이느니 창틀에 박스를 구겨넣어 흔들림을 없애라느니 한창 시끄러울때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 창문이 깨져 집안이 유리범벅이 되는 상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친정에 가면 그때 내 불안의 흔적으로 창문에 초록 두꺼운 테이프 끈끈이가 엉성하게 x의 흔적을 오래도록 남기고 있었다

트라우마 라는건 오는건 한순간인데 일생을 동행하는 초강력기억같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유리컵이나 와인잔을 좋아하지 않는다 샹들리에도 잠시보면 예쁘지만 그런곳에 두번 가진 않는다 일상생활을 못할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유리를 좋아하지 않는 누구나 이해될만한 근거는 있는 셈이다


감기기운도 있고 이불을 아들과 바꿨더니 덜 포근한 느낌인거같기도 하고 밤새 잠을 설쳤는데 새벽부터 불어오는 요란한 강풍소리에 잠시 이 타당한 불안감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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