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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술꾼 Dec 16. 2015

쉬어보니 좋더라

최대 허세 그 후, 계속되는 허세 이야기

얼마 전 폭설이 내린 날

출퇴근은 잘했냐고 친한 선후배 몇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서 쉬는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한 선배가 "다음 주에 칼바람 분데."라고 답을 보냈다.

아 다음 주부터 더 추워지는구나 생각하며

 '옷 따뜻하게  입어야겠어요'라고 답 메시지를 치고 있는데 연이어 들어온 메시지,

 "인원을 20-30% 감축한데. 피바람 분단다. 퇴출자 명단 작성하라고 했다네."

 아! 어느새 회사 감각을 잃고 당연히 날씨 얘기라고만 생각한 내 자신이 웃겼다.

하지만 혹여나 명단에 본인이 들어갈까 걱정하는 이야기가 계속되자 더 이상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깟 회사 때려치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늘 자신을 처녀가장이라고 말하는 선배에게

그런 철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다.

회사와 월급은 그녀에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런 상황을 참고 이겨내야 할 만큼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왜 일을 할까, 이런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를 가끔 생각해본다.

좀더 범위를 좁혀서 '왜 회사를 다닐까'라고 물어본다면 답은 '돈'이다.

노력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주지 않는다면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다.


돈을 포기하고 막상 쉬어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출퇴근 안하는 삶이 얼마나 윤택한지 안해본 사람은 모른다.

억지로 일어날 필요가 없으며, 매일같이 귀찮은 화장을 할 필요도 없다.


지옥철이나 교통 체증은 남의 일이 됐으며,

해가 떴을 때만 활동하면 된다.


상사를 평가하거나, 다른 사람들 걱정해주며

동료들과 커피타임을 갖던 사소한 즐거움은 사라졌다.

대신 온전히 나에 대해 생각한다.

쓸데없는 공상을 하기도 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겠다며 책도 조금씩 읽는다.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 쌓여있던 화가  차츰차츰 지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윗집 아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만

이내 그러려니 한다.


여전히 회사에서 아등바등 지내는 옛동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왜 그렇게 사는지 답답하다 싶다. 나는 그런 적 없다는 듯이.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쭉 출퇴근을 안하고 싶다.


이렇게 쉬는 즐거움에 맛들린 나도

이중적이라고 할까,

다시 회사에 돌아갈 날에 대해 생각해본다.

살아가려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돈'이 필요하고,

개인 혼자 돈을 창출하는 것 보다는,  

이미 잘 짜여져있는 회사라는 시스템안에서 돈버는 것이 훨씬 쉽다.

물론 돌아가겠다는건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지 시시각각 내마음도 변한다.

막연한 불안감을 스스로 직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겐 배부른 투정으로밖에 안들린다는 것을 알기에,

요새는 말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더 뜻깊게 더 행복하게 이 시간들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올해 남은 날들 좋은 사람들과 송년회까지는 마무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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