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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술꾼 Jan 29. 2016

층간 소음에 복수하는 법

그냥 자질구레한 이야기

7년 전에 지금 집, 701호로 이사 왔다. 신도시라 사람들이 모두 입주하지 않았을 때라 조용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 후, 801호에도 누군가 이사를 왔다. 그때부터 나의 괴로움은 시작되었다. 

밤낮없이 뛰는 아이, 생각 없이 쿵쿵 걷는 어른. 사람이 문제인지, 집이 허술하게 지어진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TV 에는 심심하면 층간소음이 유발한 폭력 사건이 나오는데,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괜히 따지러 갔다가 정말 몰상식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내가 맞을 수도 있으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 날을 잡고 장문의 편지를 썼다. 최대한 친절하게.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느라 다 쓴 편지를 꾸기고 차분하게 다시 한 장 썼다. 

아이가 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카펫을 깔고 슬리퍼를 신어달라. 낮에는 정말 참아보겠으니 밤 9시에는 못 뛰게 막아달라. 주말에 집에 있으면 천장에 달린 등이 흔들리는 것이 천장이 무너질까 봐 두려움에 휩싸인다. 

A4보다 조금 작은 종이에 빽빽하게 써서 소심하게 직접 건네지도 못하고 801호 우편함에 넣었다. 광고물로 오해하여 안 보셔도 할 수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항의를 한 것이었다.


며칠 후 801호 아저씨가 인사 오셨다. 

하얀 떡을 들고 찾아오셔서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 어쩌죠.. 둘째가 태어났는데 또 아들이라서요... 죄송합니다."

하아.. 뭘 어째.. "그냥 낮에만  조심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정말로 편지가 신경 쓰이셨는지 낮에는 미친 듯이 뛰다가도 밤 9시가 되면 기적같이 조용해졌다. 

우와.. 그래도 나쁜 분들은 아니구나 라고 기뻐할 무렵.. 편지의 효과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는 당당한 얼굴로 요새는 조용하지 않냐고 밝게 물으셨다. 

이미 마음 상한대로 상한 나는 싸한 표정으로 " 네. 그런데 9시 전까지는 실컷 뛰나 봐요"라고 뱉어버렸다. 심했다. 알지만.. 나도 화는 풀어야 하니까.  그 후로는 내가 먼저 아저씨를 피한다. 


둘째도 어느 정도 컸는지 두 아이가 뛰고 울고 하는 소리가 매일같이 들려왔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두 아이를 만나면 " 뛰는 애들이  너네냐"라고 확 쏘아붙이고 싶은데, 차마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내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건 싫어서 인사 한마디 안 건네 봤다;;;

그냥 속으로 '역시 못생긴 애들이  뛰는구나'라는 결론만 내린다. 정말로 못생겼다. 내 눈에는 그렇다. 


요새는 평일에도 집에 자주 있다 보니 이제는 윗집의 생활패턴까지 알게 되었다.

9시쯤 집 나가는 소리 4시쯤 들어와서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 

이 집 식구들도 무심하긴 하지만 아파트 시공사에 따져야 하는 생각도 요새는 든다. 

분명히 일부러 어른들이 쿵쿵 걷지는 않을 텐데 왜 이렇게 소리가 들리나. 가끔은 밤에 누군가 코 고는 소리도 들리는데 이건 나의 예민함이 불러온 환청인 건지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대체 같이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들 자고 있는 걸까


그렇게 편지 한 통 이후로 나는 그냥 참고 살았다. 문득 7년간 내가 받은 정신적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나 억울하지만 사람 사는 게 그러려니 참았다. 


그리고 나는 소심한 복수를 꿈꾼다. 

이집을 이사 나가기 전날 901호에 돈을 드리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잠시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뛰어서 7년간의 나의 마음을 너희는 단 30분이라도 느껴보라고 해주고 싶다. 

겪어봐야 안다고, 그러면 적어도 다음 이사올 사람은 덜 피해를 겪지 않을까. 


아이 있는 집은 모두 1층에만 살라고 할 수도 없고, 다음엔 옥상층으로 누가 이사 가라고 하는데, 아랫집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발걸음 소리에 피해를 입을까 봐도 신경 쓰여서 더 이상 아파트에 못 살 것 같다.  

다음 집은 단독주택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축구를 하던 코를 골던 아무도 신경 안 써도 되는 집. 


지금도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실 마음속으로는 온갖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최대한 진정하며 글로서 내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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