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구야? 왜 제 뒤를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거야? 와, 드디어 내가 있는 걸 알아차렸구나. 나는 죽음이야.
죽음이 말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뭔가 느낌이 ‘싸….’해서 뒤를 돌아본 오리는 자신의 뒤를 밟고 있는 해골바가지를 쓰고 있는 ‘죽음’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2007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5년 전. 말할 것도 없이 충격적이었다. 요즘은 성인들을 위해서만도 그림책이 나오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도 충격, 한 오리 곁에 죽음이 찾아왔고, 그 죽음은 오리와 친구처럼 지내다가 결국 ‘죽음’ 자신이 데려갈 그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슬퍼하는 서사의 전개 또한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렇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아직은 살날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여서인지 내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죽음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관계가 각별했던 엄마에게 저런 죽음이 곁에 있다는 걸 상상이라도 한다면 심장이 돌처럼 굳어 딱 멈춰버리는 기분이다.
중학교 때부터 절친인 내 친구의 남편은 내과 의사이다. 그분이 근무하는 병원이 친정에서 꽤 되는 거리이지만 7~8년쯤부터였던가. 건강검진을 받으실 일이 있으시거나 어디가 좀 많이 안 좋다고 느끼실 때면 두 분 다 친구 남편의 진료를 받기 위해 그 먼 길을 다니시곤 하셨다. 처음에야 ‘송아야, 우리 간다고 OO한테 전화해서 미리 좀 말해줄래?’라고 하셨지만, 그 이후엔 아무 말 없이 다녀오시고는 며칠이 지나서 ‘어디가 좀 안 좋아서 거기 다녀왔는데 괜찮대….’라고 선 진료, 후통보를 하셨다.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기, 한참 연구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친구도 아닌, ‘OO 남편’이라고 저장한 이름이 떠 있다. 직접 전화할 리 없는, 저장은 해 놓았었지만 한 번도 직접 전화받아보지 못한 이름. 단번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송아씨,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요. 얼마 전에 어머니가 검진하러 다녀가셨는데, 대장에 좀 안 좋은 게 보여서 정밀 검사를 해보려고 해요.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안 좋다고 판단하면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고, 그럼 내가 후배를 소개해 줄게요.’ 그때 사실 내가 이런 내용을 정말 제대로 들은 건지, 후의 기억으로 이렇게 얘기하셨겠지, 추측한 것인지조차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엄마 옆에 착 붙어서 함께 보던 드라마에서 많은 주인공이 병원에 가면 꼭 이런 얘기를 듣곤 했었는데, 그건 드라마였는데……. 그건 내 얘기가 될 수가……. 우리 엄마 얘기가 될 수 없는데……. 하며 울었다. 아직 무슨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 정도의 통보를 받았는데도 난 도저히 내 눈물을 멈출 힘이 없었다. 결국, 엄마는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을 하셨고 두 차례 검사를 받게 되셨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엄마는 암이 아닌 암의 경계쯤으로 판정이 되었다. 그제야 난 엄마한테 평상시 하던 대로 짜증도 내고 엄마에게 잔소리도 늘어놓을 수 있었다. 몇 달 후엔 엄마는 혹시나 하고 확인하던 차에 이런 경우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으셨고, 서류를 몇 군데 보험사에 보내셨다. 꽤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 두 군데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타셨고, 어느 날 친정에 가보니 마루에 세 젤 티(세상에서 제일 큰 TV)가 걸려있었다. 그걸 보면서 엄마랑 웃었다. 엄마랑 웃어서 좋았다.
어릴 때부터 결혼 전까지, 엄마랑은 주말이면 동네 목욕탕 또는 찜질방을 갔다.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고, 요구르트 하나씩 까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으면, “엄마랑 딸이 친구 같네요. ‘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아마 현재 나 같은 아들 맘 들이셨을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세상에서 가장 푸근하다고 생각한 엄마가 반백 발의 노인이 되고, 한 줌 밖에는 안 돼 보이는 여린 어깨의 할머니가 되셨다. 그래도 엄마는 아직도 내 둘도 없는 친구….
만약에,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면......
지금껏 살면서 만나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이름을 말하면서 이야기할 때 모두 다 기억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엄마의 기억력은 어마 무시하다.)
이제 결혼해서 애들 키우느라 바빠 1년에 한 번도 어려워지긴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도 더욱더) 목욕탕을 같이 가서 수다 떨 사람도 없을 것이고,
네가 무엇을 잘했니 못했니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이 되어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몹시 아파 죽만 먹고 지내면서도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내가 딱해 ‘권 서방, 내가 얘 좀 데려가서 좀 쉬게 할게’ 하고 데려가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부모님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애들 때문에 힘들어 어디 하소연할 곳 없어 전화하면 ‘엄마가 오늘까지만 들어준다!’라고 하고 늘 들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결혼해서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어도 내게 엄마가 없다면,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렵다.
‘죽음은 오랫동안 떠내려가는 오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
삶.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명제.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죽음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죽음은, 엄마의 죽음은 그렇게 당연하게, 아름답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올해 75세 울 엄마. 엄마 미안한데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아주세요. 이 세상 소풍 좀 징허게 하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