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때때로 들레는 부모님으로부터
붕어빵틀에서 한치 오차도 없게 잘 구워진
붕어빵마냥 똑 닮은 모습을 발견 할 때가 있다.
(사실은 정말 닮고 싶지 않은)
들레의 부모님은 들레가 결혼한지 1년이
다되어서야 신혼집에 방문했다.
부모님을 진작에 모시지 않은 건
사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들레 가족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과
마주하는 모습을 남편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는 이유도 그것과 같았다.
한 다리 건너 정제된 모습으로 감출 수 있었던 민씨네 가족 이면을 남편한테 최대한, 아니, 되도록
오랫동안 감추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복합적인 마음이 들고말아
결국엔 머리 싸매고 며칠을 앓아
누울 선택을 하는 들레다.
여기서 그 마음이란 ..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책임감, 측은지심, 비교.
(들레의 직업병으로 인한 분류다.)
책임감은 무슨 개떡같은 책임감인고하니,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세뇌당했던 장녀 콤플렉스가 이럴 때마다 시시때때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대놓고 강요하지 않았으나
인이 박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스물스물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는 망할놈의 책임감.
측은지심이란 들레의 혈육을 향한 생각이다.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한끼라도
챙겨주고 싶고, 챙겨야 할 것같고.
민씨 자매의 삶은 결국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때때로 이렇게 돌아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대한 모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나라도 가족을 뭉치지않으면 별 수 있나,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비교란, 결혼 후 두 가족을 모시게 되며
어느 가족에게도 기울지않고
공평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
의도는 좋으나 결국엔 네것이 더 크다, 내 것이 더 작다,
내가 손해다, 네가 이익이다 하게되는 모진 마음.
만나는 횟수며, 만남에 들이는 비용이며,
공평에 목숨걸다 결국엔 싸움으로 끝나는.
문제는 이 비교가 다분히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입체적인 들레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피해보는건
사실 들레가 아닌 들레의 남편이다.
애써 무시해버리고 넘어가면 그만이건만
크게 세가지씩이나 분류해버린 복잡함으로 인해
준비해야할게 많아진 들레는 어쩌면 이제는
즐기게됐나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받아들이며
장바구니 목록을 써내려갔다.
백숙용 닭 두마리,
부추
통마늘,
들깨가루,
양파,
대파,
손질 오징어
홍두깨살
계란
.
.
무엇부터 준비해야하지, 왜 한다고했지,
아빠는 최대한 말씀을 적게 하셔야 될텐데.
머릿속 소용돌이 속에서 겉으론 애써 침착한척하며
남편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게
차분히 장을 보고 재료정리를 한다.
언제 생각을 멈췄더라?
문득,
아무 생각없이 하루를, 아니 한 시간을 지내본적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있었는지
되돌아보게되는 들레다.
‘잠깐, 진짜 단 한 번도?’
부추를 먹기 좋게 썰고, 뜨거운 열기에 숨막혀하며
오징어를 데치고 건지는 과정 속에서
아무리 되짚어봐도
‘생각’을 멈추면서 살아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들레는 깨달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손은 멈추지않고 계속 움직인다.
생각을 해야만 작동을 하는 로봇처럼 과정 중에도
끊임없이 다음생각을 찾는다.
아니 근데 왜 이걸 부추 썰면서 ‘생각’하고있지?
들레는 때때로 온몸에 진물이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물이든 다른 사람과의 가벼운 스킨십이든, 피부 살갗을 살짝만 스쳐도 고름찬 진물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은 느낌.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않고 있으면서도 생각을 멈춘적이없다. 생각은 기어코 들레를 드러내고싶지않은 심연 저 깊숙한 곳까지 헤집어들어간다.
구석구석 후벼파고, 거덜내고,
제발 멈춰달라고 간절하게 빌며 외치게 만든다.
마음 편한 삶을 들레는 겪어본 적이나 있던가.
스스로를 짓이기고 새어나오는 진물을 마시며 사는 삶.
가장 큰 행복을 앞에두고 평생 불안에 떨며 스스로를
밟느라 뜨거운 행복을 누리지못한다.
.
.
.
들레는 최대한 미루고만 싶고 하기 싫어 죽겠는
대학과제 쯤으로 인생 퀘스트를 처리한다.
가족모임도 바로 그렇다.
사람들은 민씨 가족을 보면 참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따스한 어머니, 호쾌한 아버지, 야무진 큰 딸,
선하고 순종적인 작은 딸.
뭐가 문제일까, 결국엔 들레 자신의 문제일까.
들레는 요리 목록을 다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세척 수삼까지 따로 넉넉히 준비한 영양닭백숙,
육전과 애호박전,
부추김치,
오징어초무침,
파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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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는 대충 메뉴만 나열한 휴대폰 속 메모 앱을
잠시 응시했다. 그러곤 집에선 여간해서
잘쓰지않는 연필과 수첩을 찾아 꺼내어
다시 한 번 요리 목록을 써내려갔다.
1. 잘못을 스스로 털어놓게 하는 영양닭백숙
(부작용 없음,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놓을수록
영양이 더 흡수되어 건강해짐.)
2. 불안한 마음과 걱정을 내려놓는 오징어 초무침
(부작용: 잠이 많아질 수 있음.)
3. 먹으면 먹을 수록 살이 붙는 육전과 애호박전
(부작용: 마음에도 살이 붙어
실제 몸무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
4. 그냥 맛있는 부추김치
(그냥 행복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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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말했듯
들레의 가족은 들레가 결혼한지 1년만에
신혼집에 방문했다.
들레의 내면의 고통이 이뤄낸 성과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가족 집들이에
잠시나마 고통의 보람도 느낀 들레였다.
사이사이 이제 조각이 얼마 남아있지않은
가면을 깎아가며 야무진 큰딸역할을,
밝은 광대역할을 착실히 해낸다.
가족들이 모여앉은 식사자리에서
엄마, 아빠, 동생, 남편이 먹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걱정을 잠재울 시원한 초무침,
잘못을 술술 털어놓는 영양닭백숙,
오동통 육전,
그냥 행복한 부추김치
걱정을 잠재울 시원한 초무침,
잘못을 술술 털어놓는 영양닭백숙,
오동통 육전,
그냥 행복한 부추김치
걱정을 잠재울 시원한 초무침,
잘못을 술술 털어놓는 영양닭백숙,
오동통 육전,
그냥 행복한 부추김치
걱정을 잠재울 시원한 초무침,
잘못을 술술 털어놓는 영양닭백숙,
오동통 육전,
그냥 행복한 부추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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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일인지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남편의 입에
음식이 들어갈 때마다
들레의 마음이 또 바삐 움직였다.
죄책감과 편안함이 그리고
그저 행복함이 몽실몽실 불어
들레의 진물난 몸 이곳저곳에 보기좋게
살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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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되었나?
이것으로 되었을까.
들레는 잠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