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광복 직후 바다에 겨우 뜰 수 있는 작은 돛단배에 몇십명이 버려지듯 욱여넣어진 채 해방의 땅 조선으로 향했다.
위태로운 돛단배 뒤로 웅장한 자태의 큰 함선들이 하나 둘 덩치에 안맞게 힘없이 가라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세살의 하루코는 어린 동생들과 조국으로 돌아왔다. 하루코, 나의 하루코.
누구든 배곯고 살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그 시절, 보성군 득량군은 함양박씨의 군락 혹은 박세골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건너건너 아는 집의 아주 영리한 남자 박씨와 중매 결혼한 하루코. 어찌나 머리좋고 점잖은지 하루코는 이 남자가 퍽 마음에 들었다.
점잖은 이 젊은 날의 남편은 술만 마시면 살림살이가 남아나지않았고, 그 다음날 술이 깨면 언제그랬냐는 듯 점잖은 남편으로 되돌아왔는데, 어쩌나. 지킬일 때보다, 하이드일 때가 많았던 이 남자. 영민한 어린시절 수재 소리를 들었지만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서러움도 있었으려나. 너무나 똑똑하여 세상을 일찍 깨우친 탓이려나. 착한 하루코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옆에서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농사를 돕고, 청소를 한다.
드라마에서 보던 못된 시누이, 형님 이야기는 그 시절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터. 하루코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젊은 날의 남편은 군대를 간다. 집에서 모진 핍박과 형님살이(?)를 당하고 사는 중, 한 지붕아래에서 두 아이가 태어나면 무슨무슨 어려움이 있다나 뭐라나, 현재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미신을 꺼내며 딸을 가졌던 형님은 당당하게 안방에서 아이를 낳고, 무려 아들을 가졌던 하루코는 주방 뒷켠에 딸린 허름한 헛간에서 아이를 낳는다. 그 시절 미신 중에는 집안에서 전을 지지면 젖이 다 말라 절대 전을 지지면 안된다는 미신도 있었는데, 아이를 낳은 이후 형님은 매일같이 전을 지져댔다고 한다. 그런데 전을 지진사람의 젖은 안마르고 왜 하루코의 젖이 말라버렸을까.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가니, 급히 아기를 들쳐메고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으로 달려간 하루코는 얼마지나지않아 첫 아이를 잃고 만다. 하루코, 나의 하루코, 악마같은 형님에게 한마디도 못했던 착하디 착한 나의 하루코.
그렇게 첫 아이를 낳고 세월이 지나 네 명의 아이를 낳은 하루코는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면한다'라는 70년대 산아제한정책 시절, 길을 걷다 보건소에 끌려가서 강제로 루프삽입시술을 당했다. 그 루프는 시간이 지나 자궁벽에 올라붙어 다량의 출혈을 발생시켰고, 하루코는 매일 피고름이 나는 것을 참아내다 보건소로 갔는데, 마취주사도 놓지않고 자궁벽을 다 휘집어놓으며 루프를 찾다가 못찾으니 그제서야 큰병원에 데리고 갔다는 것 아니겠는가. 큰병원에서도 똑같이 마취주사 하나 없이 자궁벽을 다 후벼파놓기는 마찬가지였고, 어쩐지 찜찜한 표정으로 치료를 끝냈다. 온몸의 수분을 눈물로 다 흘려내고서야 집으로 돌아간 하루코는 병원에서 무사히 빼내었다니 믿어야지 별 수 있나? 아아, 하루코, 나의 하루코.
이 망할놈의 루프는 지금으로부터 7-8년전 하루코의 허리압박골절로 인해 병원에서 ct를 찍다가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 빼내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 사진 상으로 망할놈의 루프를 보자 하루코는 몇십년 전 그 날의 지옥같았던 경험이 떠올라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사히 빼내었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고 그 이후로도 매일같이 피고름을 쏟아내며 수십가지의 염증약을 먹고 버텨냈더니 그대로 살에 흡수되었던 것. 나의 하루코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하루코다.
나의 하루코는 144센티미터의 왜소한 체구에 젊은 시절의 말도 못하는 고생때문에 무릎수술을 수도 없이 하여 다리가 다 휘어버렸지만,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자식들을 걱정하고, 손주들을 걱정하고, 잘 찾아뵙지도 않는 손주가 한번씩 올때마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행복으로 살아간다.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해지는 나의 착하고, 연약하지만 강한 하루코의 이야기.
나의 하루코,
나의 외할머니.
오래도록 함께하고싶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