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같이 가벼운 모든 이들에게.
얼마 전 카카오톡을 통해 생기부열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아이 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새삼 판도라 상자를 여는 듯한 묘한 감정을 느끼며 열람해 보았는데 여느 학생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성실하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어쩌고저쩌고….
생기부 속 나는 다수의 학생들에 묻힌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그랬으면 좋을
평범한 학생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골 때리는 아이 었던 것은 확실하다.
평범하디 평범한 종합의견란에 그나마 반짝이는
단어가 있다면 ‘감정’.
그 시절의 나 또한 지금의 나처럼
지독하게 예민한 아이 었던 것이다.
온갖 모범적인 글로 포장해 주었지만 이 아이를 다음에 맡을 담임에게 혹은 학부모에게 혹은 이 생기부를 나중에 열람할 어른이 된 본인에게 이 아이는
몹시 예민하다는 단서를 제공하려
엄청난 공을 들인 생기부라는 것을
나는 안다.
고등학교 졸업으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로 살았으면 참 좋았을 것을.
이 감정이 나의 인생을
너무나 많이. 옥죄어온다.
어제는 아주 최단시간 근무를 한 날이었다.
어쩌고 저쩌고의 상황으로 인해 1시간 20분 정도만
머무르면 될 일이었는데, 요 근래 중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힘이 들었다.
어느 정도로 힘이 들었냐면,
집에 와서도 한 시간 이십 분의 시간 때문에
손발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옥죄어오는 것을 느껴
잠을 잘 이루지 못했을 정도였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기분이었다.
가벼움이란 뭘까?
말의 힘은 무겁지만 옮겨 다닐 때는
깃털보다 가벼워서 바로잡지 않으면,
아니 바로잡아도 뱉어내는 순간 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까지 날아가기 쉽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통제하려 할수록
깃털은 훨훨 날아올라
터진 솜베개처럼 부풀어오를 것이다.
어제는, 타인이 타인에 대해 정의 내리는 말을
전해 들었다. 무서워죽겠다는 표현을 들었는데
나는 그 대상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렇게 말을 전하는 사람이 무서워 사람에게
공포심마저 느꼈다.
어쩜 이럴까? 어쩜 이럴까.
말을 전하는 사람의 삶은 완벽할까?
나 또한 평가하는 사람이 되곤 한다.
근데 평가받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공포심을 넘어 안쓰럽다는 생각.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오물을 뒤집어쓴 저 표현이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를 향하기도 하겠구나.
평생 사람을 왜곡된 형태로 바라보겠구나.
점점 사람이 무서워진다.
그런데 나는 그 가볍디 가벼운 사람의 언어에
쉽게 치우치는 사람이기도 하다.
생기부 속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타인의 시선에 말투에, 태도에
조금도 영향받지 않는 단단한 아이가 아니라
부서질 대로 부서진 나약한 사람의 표본으로서
수많은 혀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어제 들었던 말이 나를 향한 언어가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슬펐던 이유는
그 말의 힘으로 인해 힘들어할, 힘들어질
-모르고 지나갈 테지만-
그분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든 가볍고, 쉽게 말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고군분투한 세월을 통감하기도 했고.
나 또한 최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심도 있는 상담을
해주었는데 그 사람이 내 상담으로 인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내 기준에 의한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또한 타인을 내 기준에 맞추어
쉽게 재단한 거겠지,라고 생각하니
결국 나도 어떤 사람을
쉽게 정의 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닌가?
결국 나도 내가 무섭다고 느낀 사람과 다를게 뭐지?
마음을 내어 상담한 그 사람에게
나를 믿고 이야기해 준 것에 고마움을 느낀 게 아니라
내 속으로 실망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을 정의 내리고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가벼움을 느낀다.
나는 나의 소중한 세월 동안
타인에게 맞추어 살며, 눈치 보며 살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그 가벼움에 희생양이 되기도
내가 그 가벼움이 되기도 한 세월이
나를 자꾸 다그친다.
내가 내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건
좀 더 진중하고,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살아내는 거겠지.
내가 생각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앞으로의 나의 삶엔
예민함보단 묵직함이 기록되기를.
나를 그만 알아주오.
가벼운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