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에서 신발을 벗어던졌다. 20km가 넘는 올레 3코스를 일곱 시간 넘게 걸었다. 표선 해수욕장에 다다라서야 털썩 주저앉았다. 꽤 오랫동안 퉁퉁 부은 발을 이끌고 왔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밟히는 차가운 모래가 뜨거워진 발을 식혀주었다. 꽉 끼어있던 발가락 사이에 시원한 틈이 생기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완주지점까지 다시 신발을 신고 걸어보려 했지만, 몇 발자국 못 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무겁고 딱딱한 신발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결국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 신발도 안 신고 걷는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앞에 사람이 지나가면 잠시 멈춰 서서 머쓱한 듯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혹시 왜 맨발로 걷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발이 너무 아파서 그랬다며 답할 준비까지 마쳤다. 그러나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내 타인의 시선을 살피기보다 내 한걸음에 집중했다. 위험한 물건을 밟지 않을까 싶어 시선은 자연스레 한걸음보다 두세 걸음 멀리 보게 되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동네 아저씨도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가던 길을 바삐 가신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집중하느라 타인의 일에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내가 내 발이 다치지 않게 오로지 한 걸음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 그동안 맨발로 걸을 생각을 못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발이 그렇게 아팠는데도 신발을 벗는 게 겁이 났다. 물론 때와 장소에 맞는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서조차 신발을 벗기가 두려웠던 거다.
누군가의 시선은 사실 내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의 시선일 때가 많다. 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걱정하며 살지만 정작 그 타인은 내게 무관심하다. 내 발걸음에 집중하지 못하고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주춤거리게 된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신발을 신고서는 나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가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타인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애를 써도 타인의 시선을 얻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그리 나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해가 되지않는 곳이라면 가끔은 자유롭게 신발을 벗어 던져도 좋다. 맨발로 땅을 딛는 감각 속에서 무관심이 주는 해방감을 누려도 괜찮다.
구겨졌던 발이 잠시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 금세 나아졌다. 종종 맨발로 올레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웠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라던 불안이 ‘누가 봐도 어쩌라고’라는 당당함으로 바뀐 나와 같은 마음 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