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 없는 집들이 많다. 허리 높이의 낮은 돌담이 곡선을 그리며 집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바람이 센 제주에서 바람이 드나들 틈새가 필요해 돌을 성글게 쌓아 담을 만든다. 현대식 대문이 늘었지만 아직 정주석과 정낭이 남아 있는 집들도 있다. 드나드는 통로 양옆에 두 개의 정주석을 세우고, 나무막대인 정낭 세 개를 가로로 걸쳐놓는다.
정낭 한 개가 걸쳐 있으면 금방 돌아온다는 의미고, 정낭 두 개는 저녁때쯤 돌아온다는 의미이며 정낭 세 개는 좀 멀리 갔다는 의미라고 한다. 빈집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다. 제주도가 삼다도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없는 세 가지로 대문, 거지, 도둑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 ‘올레’는 제주방언으로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르는 좁은 골목을 말한다. 이 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민들은 집 앞마당을, 삶의 터전인 밭 뒷길을, 때로는 개인 소유지의 한편을 기꺼이 내주었다. 집 앞을 매일 낯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허락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가끔 대문 앞에 지나가는 올레꾼들을 위해 귤 바구니를 놓아두기까지 하신다.
가끔 이런 길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 집 앞마당에서 누군가 그렇게 했다면 당장 길을 내주는 걸 그만두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길을 열어주고 배려해 준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여행자는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손님일 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는 제주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이것이 여행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또 하나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즐겁고 새로운 경험도 좋지만 안전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안전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홀로 여행한다면 해가 지기 전에 올레길을 마무리하고 늦지않게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길이 어둡고 인적도 드문데다 교통편이 적기 때문이다. 비상 연락처와 대비 경로를 미리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안전하지 못하면 많은 분들께 의도치 않은 피해를 줄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분을 만났다. 그 코스의 ‘올레지기’였다. 올레지기는 올레 길을 안내하거나 훼손된 표시를 보수하시는 일을 자원봉사로 하시는 분들이다. 안내책자에서 올레지기 전화번호가 적힌 걸 봤는데 실제로 만나뵌 건 처음이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시간이 될 때마다 담당 코스를 걸으신다는데 올레 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연 속에 떨어진 쓰레기는 금방 눈에 띈다. 누군가 무심히 버렸을 쓰레기를 주워 미리 챙겨 온 봉투에 넣었다. 이 아름다운 길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누군가의 배려로 만들어진 길 위에서 여행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배려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