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 꽃의 이름은

by 노란고구마


길가에 핀 꽃 이름이 궁금하다. 걷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진한 꽃향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향기를 따라갔더니 하얀 꽃잎 위에 둥글고 노란 잔을 엎어놓은 듯한 꽃이 반긴다. 서귀포에 있는 올레 10코스 걷다 보면 돌담 아래와 밭둑 사이에서 이 꽃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름을 알고 싶은데 한참 궁금해하고만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진 한 장이면 금방 AI가 답을 주는 시대지만 그때는 쉽게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산방산 근처에서 제주도 토박이라는 자매 분을 만났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언니가 제주시로 시집을 가신 뒤,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오신 김에 올레길 산책을 나오셨다고 했다. 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거리지만 예전에는 그 길조차 멀어 자주 보지 못했다며 웃으시는 두 분의 모습이 다정했다.


나란히 걸으면서 궁금했던 꽃 이름을 여쭤보니 두 분은 단번에 몰마농꽃라 일러주셨다. 바로 수선화였다. 제주어로 말을 뜻하는 ‘몰’과 마늘을 뜻하는 ‘마농’이 합쳐진 이름으로 말이 먹는 마늘 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수선화의 알뿌리가 마늘을 닮았지만 독성이 있어 사람은 먹지 못하고 말이나 먹던 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지만 아주머니가 어릴 적에는 들판에 흔히 널려 있어서 밭농사에 방해가 되어 잡초처럼 뽑아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잡초 취급을 받는 꽃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이 있으니 추사 김정희다. 제주도 대정읍에서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꼈던 꽃으로 유명한데 척박한 땅에서 자란 수선화를 보고 수많은 시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름을 알고 나니 꽃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노지에서 핀 꽃이 실내에서 자란 꽃보다 향기가 훨씬 진하다. 거친 바람 속에서 곤충을 불러 모으기 위해 스스로 향기의 밀도를 높고 진하게 만든다고 한다. 강한 햇볕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척박한 토양이 적당한 스트레스가 되어 오히려 더 깊은 향기를 만드는 셈이다.


코끝을 가까이 대고 향기를 맡자 곁에 있던 자매분이 이렇게 향기가 좋았냐며 새삼 놀라신다. 평생 일하느라 바쁘셔서 집 앞에 이렇게 좋은 길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신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이제서 여유가 생겼다며 진작 좀 꽃 향기도 맡아보며 걸어볼걸 아쉬워하신다.


곁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름다움 말이다. 도시에서도 자연은 부지런히 사계절을 살아낸다. 때가 되면 옷을 갈아입고 꽃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출퇴근길에 보는 가로수가 그렇고 아스팔트 틈 사이에 핀 꽃이 그렇다. 다만 지각할까 봐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보지 못했고 폰만 보고 걷느라 길 위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스마트폰 속 광고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깝지 않게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면서 말이다.


이제는 도시에서도 자연을 일부러 들여다본다. 노지에서 핀 수선화처럼 아스팔트 틈 사이에서 꽃을 틔우는 일 또한 자연의 흙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도 닮아 있다.


처음 보는 꽃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걸음을 멈춘다. 사진을 찍고 이름을 찾아보면서 조급함으로 꽉 찼던 마음에 바람 한 줄기가 들어온다. 오늘도 꽃 이름 하나를 마음속에 소중히 저장한다.




금, 토, 일 연재
이전 08화#7 누가 보면 어쩌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