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반가왔수다

by 노란고구마


안녕하세요. 길 건너편에서 오시던 분이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내게 하는 인사인 줄 모르고 눈만 껌뻑였다. 길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인사를 나누는 게 처음이라 당황했다. 몇 년째 아침마다 같은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분들이 있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다. 도시에서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이유로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자칫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뒤이어 오던 분도 내게 인사를 건넨다.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도 소리 내어 인사를 해보려 하니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혹시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색해서 어쩌나 싶었지만 올레 길에서 마주친 분들 대부분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어왔다. 길은 걸을만한지 또는 힘내라며 응원을 해주신다.


길목에 할머니가 앉아 계시길래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기척이 반가우셨는지 할머니는 곁에 앉으라며 손짓하셨다. 마침 쉬어갈 겸 옆에 앉자 할머니는 제주어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비록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혼자 다니는 나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전해졌다.

장을 보시고 오시는 길이신지 보자기 짐이 무거워 보여 집까지 들어다 드렸다. 집은 그곳에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손을 끄셨지만, 해가 지기 전에 코스를 완주해야 했기에 정중히 거절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시더니 내손에 검은 봉투 하나를 덥석 쥐여 주셨다. 반가왔수다며 출출할 때 먹으라고 봉투 안에 오메기 떡과 귤을 한가득 싸주셨다. 밥 한 끼 먹이지 못한 아쉬움과 따뜻한 정이 그 봉투에 꾹꾹 담겨 있었다. 작은 도움이 이렇게 큰 보답으로 돌려받았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시는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니 차갑던 마음이 뭉클해졌다.


혼자 다 먹지 못하는 양이라 길에서 만나는 분들과 나눠먹었다. 떡을 건네면 과자가 돌아왔고 귤을 드리면 음료수가 돌아왔다. 음식을 나누니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다. 받는 즐거움만큼이나 나누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연은 인사에서 시작된다.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인연이 시작되기도 한다. 서로 마주 보지 않는 익명성이 악한 마음을 만들지만, 소리를 내어 인사를 나누면 나쁜 마음을 먹기가 어렵다.

자연 앞에서 솔직해지는 탓인지 길에서 만난 분들과 이름도 모르고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잠시 함께 길을 걸으면서 그분들이 들려준 진솔한 인생 이야기들은 내게 큰 배움이 되었다.


하루 종일 혼자 걷다 보면 문득 사람이 반가워지는 때가 있다.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떠나온 길이었는데, 다시 사람이 그리워질 때까지 스스로를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내버려 두는 시간이 필요했다.


좁은 길에서 마주친 아이가 인사를 한다. 먼저 지나가라고 멈춰 서서 기다렸더니 감사하다며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한다. 자연을 닮은 아이의 순수한 공손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가는 인사 속에 어느덧 자연의 여유로움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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