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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경 Jan 29. 2017

내가 책 읽기를 싫어했던 이유

이제, 책도 조목조목 따져보고 싫어하자

최근 오바마와 트럼프의 독서 생활을 비교한 아티클이 주목을 받았다. 오바마는 바쁜 임기중에도 하루 1시간씩 꾸준히 책을 읽은 반면, 트럼프는 독서를 싫어하고 TV를 워낙 좋아해 참모들이 고민이 많단다. 고백하자면 나도 트럼프만큼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참 싫어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내내 학업과 관련 없는 책을 자발적으로 읽은게 겨우 한 권인데, 어떤 책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책은 영향력이 적었다.


최근, 내가 이토록 책을 외면했던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굳이 책을 싫어했던 이유를 따져보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요즘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막상 열거해보니 내가 책을 싫어했던 이유들은 꽤나 현실적이고 논리적이었다. 책과 아직은 친해지지 않은 동지들을 위해 내가 책을 싫어했던 이유를 소개해보겠다. 본인이 왜 책을 싫어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할 이유는 없는지 생각하고 독서를 시작한다면(또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면) 습관을 좀 더 꾸준히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Part 1. 독서가 '필요'하지 않았던 10대


1. 독서 없이도 학업 성취도가 괜찮은 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책을 읽어야 공부도 잘하지!” 보편타당한 이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나는 책 읽기를 엄청 싫어한 것 치곤 학창 시절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 시험 기간에만 바짝 교과서를 읽었고, 그 외 시간에는 학교와 학원에서 제공하는 수업만으로도 성적에 큰 손해가 없었다. 가끔 부모님이 책을 읽으라며 잔소리하시는 것 외에는 크게 독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성적이 최우선시되는 10대에 독서와 성적은 별개라는 걸 깨달았다.


2. 수업과 교과서만으로도 지적 감수성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업 자체는 꽤나 열심히 듣는 학생이었다. 유치원 때에도 선생님이 동화를 읽어주시면 제일 앞에서, 제일 똘망똘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여 가면서 열심히 들었던 어린이였다. 눈으로 보는 ‘텍스트’보다는 귀로 듣는 ‘이야기’가 더 좋았다. TV를 보는 것도, 공연을 보는 것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정말 좋아했다. 이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적 호기심이 풍부한 대신, 독서량이 적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인 것 같다. 수업과 연관된 교과서의 경우, 시험 때문에 읽은 것이긴 해도 진심을 다해 읽곤 했다. 좋은 문학 작품이 국어책에 실리면 ‘캬~’ 소리를 내어가며 온 마음으로 읽었다. 독서를 작가와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나는 많은 작가와 소통하는 것보다 한 작가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3. TV로 쌓은 지식으로도 충분했다.

어렸을 때는(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일상생활에서 ‘지식’을 발휘할만한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대화는 TV를 시청해 얻는 지식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내가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봤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참 좋아했다. 특히 스토리가 단순하고 유쾌한 것들을 좋아했다. 그게 TV로 치면 예능 프로그램이며, 영화로 치면 로맨틱 코미디이다. 우스울 수도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도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를 경청하듯 시청한다면 꽤나 유용한 생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MC들이 서로를 ‘멍청하다’ 평가하며 재미로 하는 상식 퀴즈에 참여해보라. 생각보다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예컨대 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 콜롬비아의 수도가 보고타인 것은 무한도전을 통해 처음 알았다.    




Part 2.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독서를 외면했던 20대


1. 머리에 '쉼'을 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는 성적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책을, 그것도 영어로 읽었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훑어 읽기(Skimming) 기술이 늘었고, 책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책을 치열한 마음가짐으로 읽었던 것.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러한 패턴은 계속됐다. 비즈니스 분석가로 일을 하면서 시장의 트렌드나 경쟁사를 조사하는 일,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는 일, 법률 약관을 면밀히 살피는 일 등을 맡았는데, 이를 해내려면 다른 직업에 비해 텍스트를 많이,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내게 책은 취미가 아닌 생존이었다. 생존을 위해 열심히 텍스트를 마주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머리를 비우는 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문인지 명상과 요가를 좋아했고, TV를 보더라도 생각 없이 웃고 잊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내 딴에는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넣었기 때문에 머리에 쉼을 주고 싶었다.


2. 독서는 오히려 고정관념을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이십여 년간 책을 싫어하면서, 나는 점점 책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

(1) 책을 많이 읽어야 견해가 넓어진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2) 책 자체가 오히려 고정관념을 유발할 수 있다.
(3) 감수성은 공연, 미술 작품 등을 통해서도 채울 수 있고, 철학은 사색으로 쌓을 수 있다.
(4) 다이어트에 비유하면 ‘사색’은 견해를 넓히기 위한 ‘운동’이고 '경험'은 ‘음식’이며 '책'은 ‘단백질 보충제’이다. 즉, 경험을 건강하게 쌓고 이에 대한 사색을 충분히 했다면 책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5) 책은 결국 이야기를 ‘텍스트’로 풀어낸 것에 불과한데 요즘 같이 다양한 방법(영상, 소리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글로벌 경험도 충분히 가능하다.)으로 이야기와 경험을 접할 수 있는 때에 책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나도 안다. 마치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운동을 안하면서 내뱉는 말 같다는 걸. 책을 그냥 싫어해왔던 내 인생을 정당화하는 논리같다는 걸.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책을 외면한 나름의 이유가 충분히 설득적이었으며 스스로 큰 위안이 되었다.


3. 독서의 실패 케이스를 종종 목격했다.

책을 많이 읽음에도 철학적 견해가 얕은 이들을 종종 목격하면서 나의 독서에 대한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독서량'과 '생각의 깊이'는 별개라는 것에 확신이 생겼다. 2년 전 우연히 북클럽에 가입한 적이 있는데,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의 논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빈약했으며, 철학의 깊이도 얕았다. 그들은 단순히 ‘지식’이 많은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 지식에 어려운 단어를 버무려 뽐내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각종 문학 작품과 작가의 이름은 줄줄이 읊으면서도 정작 ‘사랑’이나 ‘인생’과 같은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고민하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할 때는 도통 입을 떼지 못했다. 내 눈에는 그들이 지식수준을 뽐내기 위해 책을 읽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 설득적인 논리와 존중할만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목격하면서 과연 철학의 깊이와 논리가 ‘책’의 영향일지 더욱 큰 의구심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책 읽기 하나도 쉽지 않아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런 나에게도 책 읽기가 중요해진 순간이 찾아왔는데, 이는 불과 2~3개월 전의 일이다. 사회적으로는 꽤나 똘똘하다는 평가를 받는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나같이 책 읽기가 힘든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독서의 중요성을 통상적인 관점에서는 무수히 들어왔지만, 정작 일상에서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책과 친해지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나는 조금이나마 독서를 시작했다. 내가 독서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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