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휴일 D+10 (마지막 날)

2017년 2월 4일 (토)

by 최용경
# episode 1. 즐거운 마트 쇼핑
# episode 2. 로마에서 처음 해보는 포켓몬고
# episode 3.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섞이는 와인 한 잔



# episode 1. 즐거운 마트 쇼핑


Vittoria의 집 근처에는 대형 마트가 하나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여전히 마트를 좋아하는 나는 캐리어에 채워갈 이것저것을 사겠노라 비장한 마음으로 마트에 갔다. 역시나 신기한 것들이 잔뜩 이었고, 조금만 사야지 했던 내 결심은 마트 도착 1분 만에 무너졌다. 마이리얼트립에서 투어를 할 때 한국분들이 유명하다고 했던 포켓 커피도 바구니에 넣고,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려 향이 좋은 핸드 솝과 바디 워시도 바구니에 담았다. 이 후로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발사믹, 비스킷, 사탕 같은 먹을 것도 바구니에 넣었다.


KakaoTalk_Photo_2017-02-09-16-58-25_75.jpeg 정신이 없어서 마트사진은 결국 1도 못찍었다. 캐리어에 가득 담은 마트 제품들!


그런데 계산대 앞에 선 순간, 오 마이 갓!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다 담아놓고 지갑을 놓고 온 것.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지갑을 가지고 다시 나왔다. 두근두근. 나의 두 시간의 수고를 수포로 돌릴 수는 없었기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바구니는 내가 세이브 해두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고, 내가 그렇게 사고 싶었던 이탈리아산 물건들을 잔뜩 쓸어올 수 있었다.



# episode 2. 로마에서 처음 해보는 포켓몬고


평소 게임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포켓몬고 열풍이 불었을 때도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포켓몬고가 안되던 시절, 몇 차례 해외에서 포켓몬고를 해볼 기회를 의식적으로 날렸다. 그런데 한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몬스터 몇 개만 잡아주면 안 돼?” 급 부탁을 해왔다.


KakaoTalk_Photo_2017-02-09-16-58-32_24.jpeg 언제까지 GPS 신호만 찾을래!?


좋아하는 친구의 부탁이기도 했지만 나도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곧장 포켓몬고를 다운받아 그 친구의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길에서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는데, 뭔가 이상하게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데이터 자체가 너무 느려서 GPS 신호를 찾지 못하는 것. 180 유로짜리 똥-SIM 카드는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결국 로마에서 포켓몬 잡기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다운받았던 포켓몬고를 지웠다.



# episode 3.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섞이는 와인 한 잔


점점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로마를 떠나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하고, 2박 3일 동안 나의 보금자리였던 에어비앤비 집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즐거운 추억을 선사한 고양이 두 마리에게도 굿바이 인사를 했다. Vittoria는 스윗하게도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공항 가는 길, 표지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여러 차례 길을 잃고 찾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KakaoTalk_Photo_2017-02-09-16-58-28_83.jpeg 안녕, 로마! 다음에 다시 꼭 만나자.


이렇게 10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끝이 나는구나. 섭섭한 마음 반, 한국에 있는 집이 그리운 마음 반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택스 리펀을 받고 드디어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50 유로 가량의 현금이 남아있었고, 2시간 30분이라는 여윳 시간도 남아있었다. 면세점에서 마지막으로 쇼핑을 할까 하다가 차분하게 와인을 마시며 10일간의 기억들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비행기를 탈 터미널 가장 가까이에 꽤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제 유로는 내게 큰 의미가 없는 돈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 번쯤 사치를 부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스파게티 하나와 가장 비싼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KakaoTalk_Photo_2017-02-09-16-58-24_75.jpeg 로마에서의 마지막 스파게티와 와인. 별거 아닌데 요상하게도 맛이 좋았다.


설레는 감정과 고단한 육신의 에너지가 공존하는 그 공간에서,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그 장소에서, 나는 ‘명상을 위한 와인’을 한 잔 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이 섞여 있는 와인 한 잔이었다. Annibale 할아버지가 떠오르기도, 안락한 서울숲 집이 생각나기도 하게 만드는 와인이었다. 와인의 목 넘김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이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갔다. 한국에서의 일상이 미래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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